재판부는 피고인이 2대 법안에 반대하는 행위를 했더라도 이는 해당 법안에 내포된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및 집회·결사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 행위일 뿐, 그 한계를 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1961년 3월 '2대 악법 반대 공동투쟁위원회' 결성대회에 참석해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같은 해 4월 성토대회와 시가행진에 참여해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동조했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4·19 혁명 이후 평화통일론과 남북교류론이 정당, 사회단체, 학계 등에서 활발하게 논의됐고, 장면의 민주당 정부가 추진한 2대 법안에도 언론계와 사회단체, 시민단체, 학계,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 보수계까지 반대했다고 적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2대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재판부는 이런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면 사대당 역시 관련 논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공소사실과 같은 주장을 했을 여지가 있고, 달리 사대당이 북한과 관련이 있다거나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봤다. 결국 피고인의 행위를 반국가단체의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라고 평가할 수 없고, 이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기록은 국가기록원과 광주지방검찰청 확인 결과 수용자신분장과 재심대상판결문, 상소심 판결문 외에는 보존돼 있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심대상판결문 사본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 관련 사건 판결문 등을 기초로 사건을 다시 심리했다. 이 판결은 9월 17일 전국법원 주요판결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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