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디지털 성범죄에 함정수사 허용... 법원이 보는 적법 경계선은?

한석진 기자 입력:2020-04-25 23:25 수정:2020-04-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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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3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 현안 점검 조정회의에서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 할 때 잠입수사를 허용 하겠다”며 “관련 법 개정에 착수 하겠다”고 밝혔다. 잠입수사란 수사관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거나 몰래 숨어들어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범인 검거에 활용하는 수사 기법으로 함정수사의 일종이다.

이에 따라 수사관이 미성년자나 구매자인 척 신분을 속여 성범죄가 이뤄지는 인터넷 사이트에 잠입해 접근한 뒤 증거물을 수집해 범인을 붙잡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잠입수사와 같은 함정수사가 현행법상 적법한 수사에 해당돼 붙잡은 범인을 재판에 넘겨 처벌까지 할 수 있을까? 함정수사의 특성상 정정당당해야 할 수사의 청렴성에 반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할 수사 원칙에 반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위와 같은 방법으로 붙잡힌 범인이 재판에서 이를 두고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든 것이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만약 법원이 함정수사를 위법한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 과정을 문제 삼아 공소를 기각할 수 있다.

대법원은 당초 피고인이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함정수사의 적법성을 판단하고 있다.

우선 대법원은 '범의유발형' 함정수사의 경우에는 불법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8년 경찰이 손님으로 가장해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줄 것을 강요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범죄를 저지를 뜻이 없는 사람에게 경찰관이 속임수를 사용하여 범죄를 저지르게 한 다음 단속하는 함정수사는 위법하다”며 공소를 기각한 바 있다. 노래방 주인이 수사관의 도우미 요청을 한 차례 거절했는데도 다시 찾아가 도우미를 요구해 실제로 오게 된 것을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피고인의 범의를 유발했다고 보아서다(대법원 2008도7362).

반면 ‘기회제공형’ 함정수사의 경우에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 원래 범의를 가진 사람한테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현행법상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경찰관이 '부축빼기'(술 취한 사람을 부축하는 척하며 지갑을 가져가는 수법)가 잦은 지역에서 쓰러진 사람 옆에 숨어 있다가 범인을 검거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스스로 범행을 결심하고 실행을 한 범인에 대한 사건의 기소 자체는 위법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7도1903).

이에 대해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함정수사가 수사 방법상 청렴성을 상실하고 적정 절차에 위반된다는 측면이 있긴 하다"며 "하지만 국민의 공공복리를 해치는 마약이나 성범죄 등에 대해서는 이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함정수사는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함정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아동 성범죄자를 잡기 위해 직접 아동 음란사이트 '플레이펜(Playpen)'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FBI는 이 사이트에 악성 스파이웨어를 심어 사이트에 가입한 약 1300명의 회원 소재를 파악해 이 중 137명을 기소했다.

반면 국내에서 함정수사는 지금까지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돼 왔다. 때문에 수사관이 함정수사에 나섰다가 거꾸로 위법수사로 인정돼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수사관으로서는 함정수사를 벌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아야 하는 셈이다. 때문에 수사기관 안팎에선 “함정수사를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정부에서 발표한 대책이 입법까지 이어져 명문화된다면 수사관의 함정수사에 대한 면책 근거로 활용돼 보다 원활한 수사가 가능할 것으로 수사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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