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등 범죄임을 알고도 '인출책'이 돼 남의 카드를 넘겨받았다면 그 자체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33)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9월 얼굴을 모르는 B씨로부터 대가를 약속받고 타인의 체크카드 두 장을 퀵서비스로 수령·보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의 '함정수사'로 검거됐다. 범행 제보를 받은 경찰이 체크카드를 마련해 퀵서비스로 보낸 뒤 A씨가 카드를 받자마자 그를 체포했다.
재판의 쟁점은 A씨에게 전자금융거래법상 '접근 매체(카드) 보관죄'가 성립하는지였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수수·요구·약속하면서 접근 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와 "범죄에 이용할 목적으로 또는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 접근 매체를 대여받거나 대여하는 행위, 보관·전달·유통하는 행위"를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원심(2심)은 A씨가 '인출 행위의 대가'로 수수료를 받기로 했을 뿐 '보관 행위의 대가'를 받는다고 약속한 게 아니라며 보관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체크카드가 실제 범죄에 쓰인 것도 아니니 '범죄에 이용할 목적'도 없었다는 A씨의 주장도 받아들였다.
반면 대법원은 유죄 판단을 내렸다.
범죄 목적은 '내심의 의사'이므로 카드를 받을 당시 A씨의 '주관적 인식'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체크카드가 불법 행위에 쓰일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벌려고 수거책을 자임했으니, 인출 범죄가 실현됐든 아니든 범죄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범죄에 이용할 목적은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족하고 목적의 대상이 되는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거래 상대방이 접근 매체를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피고인이 인식한 것과 같은 범죄가 실행됐는지를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 피해금의 인출을 돕기 위해 수수료를 약속받고 접근 매체를 보관하는 행위가 처벌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금융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는 것을 근절하고자 하는 전자금융거래법의 입법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석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