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의사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서울고법 판단'은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쪽이었다.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성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16일 의대생과 전공의, 교수 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처분 취소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의대교수, 전공의 등의 신청은 각하하고 부산대 의대생의 신청은 기각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신청인 적격에 대해 "교수의 경우 헌법상 교육을 받을 권리와 같은 차원에서 교육을 할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전공의도 2025학년도 신입생들과 함께 교육 또는 수련을 받을 일이 없고, 의대 준비생은 아직 의대 입학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신청인 적격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헌법,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의대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의대생 신청인은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기존 교육시설에 대한 참여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돼 동등하게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 받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여지가 있어 신청인 적격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대생 신청인들의 학습권 침해 가능성 및 그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집행을 정지하는 것은 의대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원고 적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했다. 의대 증원 처분의 직접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고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은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라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가 적격 판단 없이 정부에 의대 증원 관련 자료를 요청하자 의료계가 술렁거렸다. 2000명으로 결정한 이유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는 건 모든 가능성, 특히 증원 과정이나 수치의 과학성 검증까지 포괄해 심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의사들의 이런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판단이 나왔을뿐 아니라 정부의 의대 정원 정책에 법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까지 이어진 셈이 됐다.
다만 2심에서는 의대생들은 행정처분을 신청할 자격이 있다고 봤다. 법원 관계자는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당해 행정처분으로 인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 당한 경우에는 취소소송을 제기해 당부의 판단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제3자의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비교적 넓게 인정해 의대생 신청인들의 신청인 적격을 인정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각하·기각 결정에 따라 정부는 계획대로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사실상 확정됐다. 법원 결정을 기다렸던 일부 대학들은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을 진행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전형심의위원회가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하면 대학들은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 '수시모집요강' 발표와 함께 정원을 확정한다.
전국의과대학비대위가 의대 증원이 확정되면 1주일 휴진을 실시하고 매주 1회 휴진을 단행하겠다고 밝혀 의료계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일부 원고들에 대해 원고적격 등 소송요건을 인정한 것은 법리적으로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집행정지에 필요한 다른 요건들이 인정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1심과 동일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