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판은 저지(judge) 아닌 저지(沮止)"…구회근 판사,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종합)

홍재원 기자 입력:2024-05-08 10:17 수정:2024-05-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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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고법 설명 기사 후반부에 추가]

  • "눈치 안 보고 사법권 엄중 행사로 유명"

  • 정부에 "의대증원 자료 '몽땅' 제출" 요구

  • 때아닌 공공기록물법에 정부 '전전긍긍'

  • 다음주 증원 취소 가처분 인용여부 결론

서울고법 구회근 부장판사(작은 사진)의 의대 증원 가처분 결정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재가공]


서울고등법원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안을 전격 백지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판장을 맡은 구회근 부장판사(연수원22기)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정부 정책을 검토하겠다면서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구 판사는 평소 “재판은 영어로 저지(judge)지만 저지(沮止‧못하게 함)란 우리말에도 부합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뭘 못하게 한다는 걸까. 지인들은 중의적으로 해석한다. 첫째 웬만하면 재판까지 가지 말라는 뜻에서 ‘재판 저지’를 의미하고, 둘째로는 법의 본질은 결국 모든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만큼 사법권에 대해 엄중한 자세를 갖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본다는 얘기다. 
 
판사 출신인 한 지인은 아주로앤피에 “구 판사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야말로 ‘법대로’ 하는 스타일”이라며 “정부 정책도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의대 증원 관련 가처분 사건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원점에서 검토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위안부 불법 동원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피해자 유족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1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깨고 “현행 국제 관습법상 일본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게 타당하다”며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부 정책이나 외교 관계 등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 판사는 이번에 전공의·수험생 등 18명이 복지부와 교육부를 상대로 의대 정원 증원 처분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항고심에서 “법원 결정 전에는 최종 승인이 나지 않아야 한다”며 정부에 증원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그것도 거의 ‘몽땅’ 내놓으라는 수준이다. “의사 수 부족 등에 대한 기존 연구보고서는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없다”며 “대학 실사자료와 회의록을 모두 제출하라”고 했다. 자료 제출 요구 자체가 이미 '원점에서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법조계는 해석한다.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따르면 정부는 주요 정책 결정 관련해 회의록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엔 회의의 명칭, 개최기관, 일시 및 장소, 참석자 및 배석자 명단, 진행 순서, 상정 안건, 발언 요지, 결정 사항 및 표결 내용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사-정부 협의인 의료현안협의체(의‧정 협의) 회의록은 없다고 밝히는 등 수세적인 상황에 몰렸다. 이 협의체가 회의록 생산 대상인지는 논란거리일 수 있지만 적어도 재판에 유리한 정황은 아닌 셈이다.
 
물론 구 판사가 의사 측 신청을 기각하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구회근 부장판사는 10일까지 정부 자료를 제출받은 뒤 다음주 중 가처분 인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구 판사(56)는 전남 광양 출신으로 순천고를 나와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뒤 1996년 수원지법 판사로 출발해 2019년부터 서울고법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법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한편 서울고법 관계자는 아주로앤피와의 통화에서 "구 부장판사는 '재판은 영어로 저지(judge)지만 저지(沮止‧못하게 함)란 우리말에도 부합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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