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의 한자어는 칡나무(葛)와 등나무(藤)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이상의 목표나 정서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다. 이런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잖은 사회학자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이 한층 나아진다고 설파한다. 그렇다면 2019년 대한민국이 직면한 수많은 갈등은 과연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 ‘진통’의 과정일까? <아주경제>는 그 답에 대한 단초를 신년기획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를 통해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2018년은 ‘노사갈등의 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촉발된 노사갈등은 ‘탄력근로제 확대’에서 폭발했다. 노사갈등 해결을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출범했지만 노동계 한 축인 민주노총이 빠지면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최저임금‧탄력근로제 갈등...광주형 일자리 파행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임금을 지난해보다 10.9% 오른 8350원으로 의결했다. 지난해 7월 의결 당시 사용자위원 9명이 불참했다. 노사 어느 한쪽이 회의 진행에 불만을 품고 퇴장한 경우는 있었지만, 아예 불참한 것은 처음이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 입장에서 저임금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향상돼 고소득 임금노동자와 소득 격차를 줄여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용자 측은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이 사업장에 부담을 주고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이 몰려올 가운데 탄력근로제 확대를 둘러싼 노사갈등도 문제다. 탄력근로제란 주 52시간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맞추는 제도다. 업무가 많을 땐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대신 적을 땐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탄력근로제는 최대 3개월이다. 즉 3개월 평균 주 52시간을 지키면 위법은 아니다. 사용자 측은 이 기간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달라지만, 노동계는 기간이 늘어나면 주 52시간 취지가 무의미해진다는 주장이다.
당장 올 1월 1일부터 주 52시간을 준수해야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탄력근로제가 확대되지 않으면 무더기 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는 주 52시간 단속‧처벌을 올해에도 유예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여·야·정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늘리는 법안을 연내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 결론을 기다리자며 국회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올 1월까지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한 경사노위 최종안을 확정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가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에 사활을 걸고 있어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사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광주광역시와 현대차가 함께 추진한 ‘광주형 일자리’도 암초에 부딪혔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광주시와 현대차가 총 7000억원을 투입해 연간 10만대 규모의 1000cc 미만 경형 SUV 공장을 세우는 프로젝트다. 지자체와 기업이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는 인건비를 낮춰 노사가 상생하는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동차 공장이 차량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단체 협약을 유예한다’는 조항에 노동계가 반발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문 정부의 대표적인 일자리 모델로 기대를 모은 광주형 일자리는 결국 2018년 대한민국 노사갈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냉탕과 온탕 오가는 정부 정책...사회적 대화 필요
유영성 경기연구원 상생경제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해법으로 ‘영국식 최저임금 인상’ 사례를 언급했다. 영국은 2015년 25세 이상에 노동자에 대해 생활임금제(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고용과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유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 규모별 최저임금 인상속도를 다르게 적용해 취약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사업체 규모, 의료보험 수령 여부에 따라 목표임금에 도달하는 시기를 달리한다”며 “기업 역량을 고려한 차등화 된 임금인상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일부 기업에선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며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선 단위 노동자들의 협의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현장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기업‧대재벌 중심으로 이뤄진 우리나라 산업 구조상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원하청 거래, 변동단가까지 보장될 수 있는 법 제도가 완비돼야 한다”며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최저임금과 연동된 하청 단가를 보장해야만 상생이 가능한 노사관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재원 메이데이 법률사무소(노동 전문)는 지난해 노사갈등의 원인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부 정책을 지적했다. 그는 “차라리 보수 정권은 친(親)기업으로 간다는 방향성이라도 있었다”며 “일관성이 있어야 상대방이 예측이 가능한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는 “최저임금이나 탄력근로제는 국가 수준의 이슈이면서 분배 교섭 이슈”라며 “어느 한 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 쪽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갈등은 진보-보수 갈등과 맞물리면서 이념 대결구도로 이어진다”며 “선진국은 이런 이슈를 잘 풀어가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거칠게 갈등이 이어져 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결론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해야 된다. 그동안 사회적 대화는 무늬뿐인 ‘들러리’란 지적을 받아왔다. 지금처럼 정부·여당이 정답을 제시하는 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노사가 대타협을 이뤄낼 수 있도록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론이 나오고 그 과정에 정부가 균형‧조정‧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