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뷰 아파트' 갈등-2] 철거 vs 완공, 결국 대법원 손에 달렸다

김민성 인턴기자 입력:2022-01-01 04:00 수정:2022-01-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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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사 세 곳 모두 허가변경 심의 철회... 최종 결정은 법원으로

  • 고양 창릉신도시도 비슷한 문제... 이번 검단신도시 사례가 영향 미칠 듯

[아주로앤피]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장릉에서 바라본 검단신도시 아파트. 풍수지리 상 계양산이 보여야 한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입주예정자들의 주거권과 건설사의 재산권 vs 세계문화유산 자격 박탈'
김포 장릉 인근에 건설 중인 검단심도시 아파트 건설사 세 곳 모두가 문화재위원회 심의 신청를 철회하면서 ‘왕릉뷰 아파트’를 둘러싼 갈등의 향방은 대법원 손에 결정될 전망이다. 
 
■ 완전 철거? 상층부만 철거? 해결책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경우 공사중지 또는 원상복구 명령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체 철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건설사 뿐만 아니라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의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문화재청은 대방건설과 대광이엔씨, 제이에스글로벌 등 3개 건설사가 검단신도시에 건설 중인 아파트 총 44개 동 중 보존지역에 포함된 19개 동에 대해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다. 문화재청은 장릉 인근 아파트 공사를 멈추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이 2017년 1월 김포 장릉에 대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허용기준을 조정하고 고시했으나 이들 건설사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에 고층아파트를 지으면서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공사중지명령과 함께 건설사들에게 개선안을 요구했다. 건설사들은 개선안으로 기와 옥상을 올리는 등 건물 외관을 장릉과 어울리게 시공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하지만 장릉에서 계양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해 이 방안은 보류됐다.
 
또 장릉과 아파트 사이 높이 58m정도의 큰 나무를 심어 아파트를 가리자는 개선안도 나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용문사 은행나무가 42m인 것을 감안하면 58m나무를 여러 그루 심는다는 개선안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화재위원회는 건설사들이 제안했던 개선안들을 거부하고 완전 철거나 상층부 철거가 아니면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상층부 철거는 현재 20~25층 높이의 아파트를 4층 정도 높이인 20m 기준으로 헐자는 의견이다. 이 정도 높이까지 철거해야 장릉에서 계양산을 바라볼 수 있다. 건설사들은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상층부 철거를 반대했지만 문화재위원회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상부층을 일부 해체·철거해도 안정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건설사는 상층부 일부 철거방안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서구청도 “해당 부지는 이미 2014년 문화재보호법상 현상변경허가를 완료했다”며 “문화재청으로부터 김포 장릉 주변 건설 기준이 변경됐다는 통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 책임을 문화재청으로 돌렸다.
 
한편, 지난 10일 서울고등법원은 문화재청의 공사중지명령에 대해 건설사들이 신청한 가처분을 인용했다. 앞서 세 건설사 모두 공사중지 명령의 집행을 정지해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대방건설 측 신청만 인용돼 나머지 두 건설사의 아파트 공사는 중단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대방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건설사들도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결정문에서 ▲공사 중지로 건설사가 존립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를 수 있는 점 ▲입주예정자들이 입을 재산적·정신적 손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 ▲오래 전 건설된 아파트로 이미 일부 경관이 훼손됐다는 점 ▲처분 당시 골조 공사가 완료돼 나머지 공정이 진행되더라도 새롭게 경관 침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문화재청은 서울고법의 결정에 불복해 재항고를 결정했다. 문화재청은 “나머지 2개 건설사의 공사중지명령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것과 관련해 문화재청은 재항고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건설사 세 곳 모두 현상변경 허가 요청을 철회하면서 결국 이번 사건의 결말은 대법원 판단으로 결정되게 됐다.
 
한편, 오는 1월과 3월 대광이엔씨와 금성백조가 각각 신청했던 공사중단에 대한 행정소송이 개시될 예정이다. 문화재청과 건설사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걸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 소송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는 이번 사태가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화재청은 이번이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한 첫 사례인 만큼 안좋은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이 한 발 물러나면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존가치가 경제논리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건설사 측은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입주예정자들을 내세워 절대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입주예정자들은 이미 계약금과 중도금 대출까지 진행한 상태다.
 
해당 3개 단지 입주 예정자들은 최근 ‘김포 장릉 피해 입주예정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비상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문화재청, 인천도시공사, 인천서구청, 건설사의 성급한 행동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입주예정자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관련 기관과 건설사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입주민들의 피해만 점점 커지고 있다.
 
■ 문화재보호법과 관련된 다른 사례는?

풍납토성 주변 아파트는 문화재 보호 규제로 인해 높이가 제한된다.[사진=인터넷 커뮤니티 slr4u]

서울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천호대교 인근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아파트를 한 채 볼 수 있다. 풍납토성 옆에 위치한 ‘시티극동’아파트가 그 주인공이다. 이 아파트는 문화재 주변 ‘앙각’규제 때문에 보통 아파트들과는 다르게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지붕을 갖게됐다. 서울시 문화재보호조례 제19조는 4대문 밖의 지정문화재에 대해선 보호구역 경계 지표에서 7.5m높이를 기준으로 앙각 27도 선 이내로 높이를 규제하고 있다.
 

[자료=문화재 현상변경 실무 안내집]

‘앙각’이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에 있는 목표물을 올려다볼 때 시선과 지평선이 이루는 각도를 말한다. 풍납동 삼각형 아파트는 주변에 풍납토성이 있어 문화재 인근 건축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삼각형 지붕을 갖게 됐다. 보통 문화재 주변에 짓는 다른 건축물은 계단형식으로 설계하지만 씨티극동 아파트는 미끄럼틀을 연상시키는 사선 디자인을 채택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편, 고양시 서오릉 주변 창릉신도시도 김포 장릉과 같이 문화재 가치를 훼손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8년 정부가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주변을 3만 8천여 가구 규모의 창릉신도시로 지정했다. 서오릉은 창릉, 익릉, 경릉, 홍릉, 명릉 등 5개의 조선왕릉을 통칭한다. 창릉신도시의 일부 구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오릉의 반경 500m 이내에 위치해 문화유산의 가치가 훼손되고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까 우려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지난 2019년 국정감사에서도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개발현장에서 매장 문화재가 발견됐음에도 공사를 계속 진행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또한 지난해 11월 시작된 광화문광장 리모델링 공사 중 삼군부와 사헌부 등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흔적이 대거 발견돼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최근 문화재 보호와 재산권이 충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김포 장릉 인근 검단신도시는 문화재청과 건설사의 이해가 충돌한 첫 사례인 만큼 대법원이 이번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앞으로 문화재 주변 건설사업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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