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
지난 9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원의 제목이다. 이 청원은 총 21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인조의 부모 원종과 인헌왕후의 무덤은 왜 2021년 대한민국에서 화제가 됐을까.
■조선 왕릉 전체의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사적 제 202호 김포 장릉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인조가 묻힌 파주 장릉에서부터 부모의 묘인 김포 장릉, 그리고 계양산이 일직선으로 놓여있다. 조선 왕릉은 릉을 기준으로 뒤에 '주산', 앞에는 '조산'을 두는데 계양산이 김포 장릉의 조산이다. 만약 검단신도시의 아파트가 현 계획대로 완공된다면 장릉에서 보이는 '조산' 계양산의 조망을 가리게 된다. 김포 장릉의 풍수지리를 해치는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무덤·집터·궁궐·도읍지의 터 잡기, 건축, 조경을 모두 관통하는 것이 풍수지리다. 그러므로 풍수지리는 조선의 역사이자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21세기 풍수지리학을 ‘미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풍수지리는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조선 왕릉은 각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이 아니라 전체 조선 왕릉이 하나로 묶여 '조선 왕릉'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조선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를 설명하며 '조선 왕릉은 자연 및 우주와의 통일이라는 독특하고 의미 장례 전통에 입각해 있다. 풍수지리 원리를 적용하고 자연경관을 유지함으로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경건한 장소가 창조되었다'고 말했다. 또 '조선 왕릉 유적은 왕릉의 환경, 배치, 구성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게 할 수 있게 해준다'며 왕릉의 풍수지리적 요소가 문화유산 등재의 중요 이유였다는 것을 밝혔다.
만약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검단신도시 아파트가 모두 완공된다면 계양산과 김포장릉이 단절되어 유네스코가 조선왕릉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화재보호법 제35조 제1항의 2는 ‘국가지정문화재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장릉 경계선으로부터 500m 이내는 문화재보호법 제13조에 따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다. 해당 지역에 높이 20m이상 건축물(아파트 7층 높이 정도)을 짓기 위해선 문화재청장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문화재청은 검단신도시 '왕릉뷰 아파트'의 건설사 세 곳이 심의·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건설사와 입주민 측은 이미 2014년 허가를 받은 땅에 건설한 것이며 문화재청이 관련 기관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포 장릉을 두고 '문화재 보호'라는 문화재청의 가치와 입주민과 건설사의 '재산권'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문화재청, “왕릉 조망 해친다”... 최소한 상층부라도 철거해야
지난 2017년 1월 19일, 문화재청은 문화재청고시 제2017-11호를 통해 김포 장릉 등 사적 12개소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 변경을 고시했다. 해당 고시에 따르면 김포 장릉 인근 500m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최고높이 20m 이상 건축물을 짓기 위해선 문화재청의 개별 심의를 거쳐야만 한다. 검단신도시 아파트단지가 최종 사업 승인을 받은 것은 2019년이기 때문에 변경된 기준의 적용을 받는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지속적인 유네스코의 감시를 받게된다. 체육계의 거센 반발에도 태릉선수촌을 이전한 것이나 동해남부선을 시가지와 떨어진 곳에 건설하는 것도 유네스코 권고에 따른 것이다. 이번 장릉 사건도 유네스코 측에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기에 만약 아파트가 건설된다면 김포 장릉만이 아닌 조선왕릉 전체가 문화유산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장은 “김포 장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하면 다른 조선왕릉도 일괄적으로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며 “유네스코와 충분히 협의해 난개발을 막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김포 장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단독으로 등재된 것이 아니라 조선왕릉 전체가 하나의 항목으로 등재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릉의 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경우 조선왕릉 전체의 문화유산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만약 이번 사건에서 철거가 진행되지 않아 이른바 ‘알박기’가 성공할 경우 수익을 노리는 건설사들이 전국의 문화재 주변을 마구잡이식으로 개발해도 된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완공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뭐라도 지어놓기만 하면 입주민 보호와 철거의 어려움이라는 명분에 떠밀려 실질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건설사·입주민, “이미 2014년 허가받았다”... “다 지은 아파트 어떻게 부수나”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2014년 인천도시공사가 신청한 현상변경허가 신청서는 택지개발에 대한 내용뿐이었고, 건설에 필수적인 설계도, 입면도, 배치도, 건설사 이름 등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며 “아파트 사업계획승인이 2019년에 이뤄졌는데, 이때 인천도시공사나 인천 서구청, 건설사가 한 번 더 검토했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문화재보호법 제35조에 따라 왕릉 인근에 건축물을 지을 때는 행위자(건설사)가 직접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어 건설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한편, 일부 입주예정자들은 2017년 문화재청이 건축행위 허용기준을 변경하고 인천 서구 등 관계기관에 알리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며 문화재청을 고발했다. 인천 서구청 역시 ‘문화재청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통지받지 못해 아파트 사업을 승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의 입장은 달랐다. 김포 장릉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기 때문에 별도 통지가 없어도 인천 서구청이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시는 관보에 게재하는 것만으로도 효력이 발생하기에 직접 통보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 서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014년 8월 당시 사업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가 ‘현상변경 등 허가’를 완료했고, 이를 적법하게 승계받은 건설사가 아파트 건축을 진행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문화재보호법 제81조 제1항에 따라 문화재보호법상 현상변경 등 허가는 ‘대물적 허가’로서 승계 가능한 것이고 법 제81조도 같은 취지에서 ‘권리·의무의 승계’를 규정하고 있다”며 “문화재청이 2017년 1월 개정된 고시 2017-11호의 강화된 규제 내용을 적용해 다시 허가받게 하는 것은 법치국가 원리와 소급효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과 인천 서구청, 건설사가 첨예하게 대립함에 따라 김포 장릉 앞 '왕릉뷰'아파트의 철거 여부는 대법원의 판단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