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 프리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아" 충성의 대상 증명한 세 군인

박용준 사회팀 팀장 입력:2025-04-22 17:14 수정:2025-04-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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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엄령의 밤, 윤 대통령 명령 거부한 군인들…헌법·국민 향한 충성

 
4일 0시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도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친위 쿠데타 저지에 큰 역할을 했던 군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군 내부의 중심인 육사 출신이 아닌 ’비육사’ 출신임에도 대통령의 명령이 아닌 국민과 헌법을 택해 당당한 결정과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김형기, 윤석열 앞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12월 4일 새벽, 김형기 중령(간부사관)은 특전사 1특전대대장으로서 국회 진입 지시를 상관인 이상현 여단장에게서 직접 받았다. “담을 넘어 본청에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명령이었다. 그는 이 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했고, 부하들에게 이를 하달하지 않았다.
 
그는 계엄군의 국회 봉쇄 및 침탈에 항거하는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라는 지시도 받았지만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들어 따르지 않은 사실도 밝혔다. 
 
김형기 중령은 지난 21일 형사재판 법정에 섰다. 증인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조직에 충성하고, 그 조직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과거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했던 발언이기도 하다. 김 중령은 이를 윤 전 대통령의 면전에서 되돌려줬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눈을 감고 듣다가, 발언이 끝나자 김 대대장을 응시했다.

김 중령은 “차라리 나를 항명죄로 처벌하라”며 “내가 부하들에게 임무를 하달하지 않은 덕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증인신문을 마치기 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라며 23년 전 병사로 처음 입대한 이후 부사관을 거쳐 장교 임관 등 자신의 군 생활 이력을 언급했다. 미군에는 제임스 매티스처럼 병사 출신으로 장군까지 오른 사례가 있지만, 병사 출신의 간부사관은 군내 소수파에 속한다. 
 
조성현, 국회 진입 거부…“나는 의인이 아니라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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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방사 1경비단장이던 조성현 대령(ROTC)은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직접적으로 거부한 인물이다. 그는 계엄군에게 “사람 없는 지역에 대기하라”고 명령했고, 후속 부대에게는 “서강대교를 넘지 말고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문에도 이 사실을 명시하며, 정당하지 않은 임무를 거부한 결정적 조치로 평가했다.

“조성현은 위 임무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국회 경내로 들어간 병력에게는 사람이 없는 지역에 집결할 것을, 후속부대에게는 서강대교를 넘지 말고 대기하라 지시했다.” 헌법재판소 2024헌나1 결정문

조 단장은 지난 2월 13일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2024.2.13) 증인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 측의 ‘의인 행세’라는 공격적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의인도 아니고, 제 부하들의 지휘관입니다. 제가 거짓말을 하면 제 부하들은 다 압니다. 그래서 저는 거짓말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국회 진입 명령이 “불가능한 지시”라는 점을 강조하며, 상관 명령이라도 헌법과 배치되면 따르지 않는 것이 군인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조 단장은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지 않느냐”는 윤 전 대통령 측 질문에 “특정 기억은 더 도드라진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그는 학군(ROTC) 출신의 첫 수방사 1경비단장이다. 1경비단장은 육사 출신 ‘성골’이 도맡아왔다는 점에서 발탁 배경에 일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12·3 당시 처신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김문상이 벌어준 40분…“계엄군 헬기, 국회 진입 거부”
2023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전격 발령되자 707특임대원들을 태운 특전사 헬기들이 서울 상공 진입을 시도했다. 당시 수방사 작전처장이던 김문상 중령(3사)은 합참과 육군본부 승인 절차가 없다는 이유로 세 차례나 진입을 거부했다. 결국 헬기들은 약 40분간 서울 외곽 상공에서 대기했다.

이는 단순히 기계적 판단과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출동한 계엄군 헬기를 장시간 공중대기시킨 것이다. 그 40분은 시민들이 국회 앞에 집결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었다. 국회 진입을 시도하려던 계엄군의 작전이 지연되면서, 비상계엄의 명분과 동력이 꺾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긴박했던 타임라인을 되짚어보면 김 처장의 판단이야말로 계엄작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타로 평가되고 있다.

오는 24일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 등에 대한 공판이 열린다. 이날 특전사 헬기가 서울 상공에 진입할 수 있도록 박안수에게 건의한 인물인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조종래, 그리고 김 처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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