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성범죄 피해자'를 맡아 되레 성추행한 국선변호사가 피해자에게 3000만원의 위자료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건 피해자가 국선변호사 A씨(46)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13단독 이아영 판사는 피해자 B씨가 A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5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내용이 인정되며 따라서 A의 행위는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B씨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 경험칙상 확실하고, 피고는 정신적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이 있어 위자료 청구는 정당하다"며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재판부는 "피고는 당시 원고의 국선 전담 변호사였는데 재연을 빙자해 원고를 추행했고, 추행의 정도가 심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나이, 범행 경위와 행위의 형태 및 정도, 관련 형사 사건 결과, 범행 후 정황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A변호사(변시5회)는 지난 2020년 6월 15일과 8월 31일 광주 동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성폭력 사건 피해자 2명을 각각 법률 상담하는 과정에서 범행 재연을 가장해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변호사는 당시 사건에 대해 상담하는 도중, 피해자들이 사건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피해자들에게 "증거가 없는 사건이라 무죄가 날 수도 있다. 재연하면 기억이 날 수 있다"고 말하며 피해 내용을 하나씩 물어보며 재연을 명목으로 피해자를 추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불을 끄고 피해 여성들에게 성적 취향 등을 묻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A씨를 피해자 국선변호인으로 선임했지만, A변호사에 대한 피해자들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다른 국선변호사로 교체했다.
A변호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2021년 7월 법정 구속됐다.
재판 과정에서 A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를 전달하는 법률 대리인일 뿐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감독하는 관계가 아니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법원은 A변호사의 신청을 기각했다. 광주지법 형사3단독 오연수 부장판사는 "A의 주장은 국선변호인 제도 취지를 이해 못하고 피해자 보호책임을 방기한 채 업무를 했다는 방증"이라며 "피해 재연을 빙자해 위계를 이용한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대단히 좋지 않다"고 했다.
이에 A변호사와 검찰 양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당시 항소심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2부(김진만 부장판사)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을 선고한 1심 선고도 유지했다. A변호사는 현재 만기 출소했다.
한편,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는 지난 2012년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해 마련한 제도다. 성폭력처벌법 제23조를 보면 성폭력범죄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 검사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시작으로 아동학대 피해자, 학대 피해 장애인 등으로 지원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