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이숙연 신임 대법관(연수원26기)이 지난 6일 취임하면서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법관이 나왔다. 이 대법관이 취임사에서 인공지능(AI) 사법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리걸테크를 이끌며 법률시장에서 AI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는 이공계 출신 법률가들이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11일 아주로앤피 확인 결과 주요 리걸테크 기업들 중 로앤컴퍼니에 이상후 변호사(변시2회), 베링랩 문성현 외국변호사, 로앤굿 박수진 변호사(변시7회) 등 이공계 출신이 전면에 포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로앤컴퍼니는 법률종합포털 '로톡'의 운영사다. 변호사를 연결시켜주는 서비스인 로톡에 이어 최근에는 AI 법률 비서 '슈퍼로이어'를 출시했다. 슈퍼로이어는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법률서비스로 법률 리서치, 초안 작성, 문서 요약 등의 기능을 갖췄다.
이상후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개발자로, 로앤컴퍼니 AI연구소의 핵심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을 돕고 있다. 이 변호사는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해킹 동아리를 하는 등 특이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학부 졸업 후 연세대 로스쿨에 진학하고 법무법인 광장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로앤컴퍼니 AI팀장으로 합류하게 됐다.
법률, 특허 등 전문분야에 특화된 AI 번역 엔진을 제공하는 기업인 '베링랩'은 이공계 출신 외국변호사가 회사를 직접 이끌고 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문성현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는 아이비리그 명문 펜실베니아대 신경과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번역 업무를 맡다가 직접 법률 계약서번역 서비스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해 베링랩을 설립했다. 문 대표는 "개발자는 아니기 때문에 AI 체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신경과학과를 전공한 것이 알고리즘 방식을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같은 이해를 발판으로 회사를 내실 있게 키워온 문 대표는 최근 배링랩에 30억원 규모 프리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 투자는 SBVA(전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주도로 이뤄졌다. 이미 미국,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15개 국가에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번 투자 유치를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로앤굿은 변호사비 지원(소송금융)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리걸테크 기업이다. 소송금융 서비스는 재판 비용 부담 능력이 없는 원고에게 변호사 착수금, 인지대, 송달료 등을 지원한 뒤 승소하면 지원금에 일정 수수료를 더해 받는 서비스를 말한다. 로앤굿은 지난 3월에는 사업을 확장해 비법조인들이 판례, 유권해석, 지침 등 법률정보를 자연어 문장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AI 챗봇 서비스 '로앤서치'도 출시했다.
로앤굿 이사인 박수진 변호사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이후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세종 등 대형로펌을 거쳐 로앤굿에 합류했다. 현재는 로앤굿의 주력 서비스인 소송금융 업무를 총과하면서, 법률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챗봇을 고도화하는 작업도 맡고 있다.
이들에게 눈길이 쏠리는 것은 첫 이공계 출신 대법관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이 대법관은 포항공대(현 포스텍) 개교 첫해인 1987년 학교 전체 수석으로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포항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일한 이력이 있다. 판사로 임용된 뒤에도 대법원 산하 인공지능연구회 회장 등을 맡았다.
이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AI 기술을 재판 업무에 도입할 필요성을 피력하고 리걸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것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이 대법관은 "리걸테크 산업은 변호사 업계의 경쟁자가 아니라 변호사의 전문 서비스업의 생산력을 증대시켜 업무를 효율화하고 종국적으로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취임하면서는 "인공지능 사법서비스의 구현을 앞당겨, 신속하고 충실하며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법부 본연의 기능을 더욱 원활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이공계 출신 법률가들의 비중과 역할이 커지는 건 AI로 대변되는 디지털 기술의 급성장과 무관치 않다. 사회 변화와 법률이 따로 갈 수 없는 만큼 자연스럽게 법조계에도 이공계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로스쿨 도입도 한몫 했다. 과거 사법시험 시절에는 법학부 전공자가 대다수였지만 로스쿨 도입으로 출신 학부가 다양해졌다. 장준용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로스쿨 도입으로 이공계 출신들도 상당수 법조계에 유입되면서 송무를 벗어나 법률가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는 것 같다"며 "로스쿨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