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원 사망 사건인 ‘채상병 사건’ 특검법이 무산되면서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2021년 개정돼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군사법원법은 당초 군의 ‘셀프 수사’를 막고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도록 개정됐지만 채상병 사건을 보면 개정법이 되레 권력이 수사를 막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군사법원법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개정됐다. 당시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중사는 상급자인 남성 부사관에게서 성폭력을 당하고 이를 신고했지만, 군 경찰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무마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후 이 중사는 죽음을 택했다.
법 개정 내용은 군내 성폭력 사건과 사망 사건은 전부 민간 법원 관할로 옮기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수사 관할도 민간으로 넘기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예상 외로 군 수사단이 초동 수사를 할 수 있느냐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해병대 채모 상병이 수해 지원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강 하구에서 숨진채 발견된 변사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초동 수사를 진행해 임성근 해병1사단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 국민의힘은 이게 ‘월권’이라고 본다. 바로 경찰에 넘겼어야지 왜 계속 수사해 8명이나 피의자로 적시해 넘겼냐는 것이다. 박 대령을 항명죄로 기소하기까지 했다.
이는 “왜 제대로 수사했느냐”고 질책하는 모양새여서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사건을 넘겨 받은 경북경찰청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란 우려가 나온다.
용산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임성근 소장 보호에 나선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사고가 나기 전해인 2022년에도 수해가 났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 방문에서 한 실언으로 비판 여론이 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임 소장(당시에도 1사단장)이 수륙양용 장갑차 등을 동원해 인명구조에 나서면서 여론이 호의적으로 돌아섰고, 윤 대통령도 임 소장을 각별하게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채 상병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임 소장이 피의자가 되자 대통령실이 움직였다는 분석이 많다.
이렇게 되자 군인권센터 등은 “군사법원법에서 모호성을 제거하는 쪽으로 재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예 군 수사단이나 군사법원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군법무관 출신 강석민 변호사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군사법원법 개정 취지에 반한 것으로 결국 민간에서 전부 담당하면 되는 일”이라며 “군사법원이 존재하면 결국 지휘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공수처 수사 결과 윤 대통령은 해병수사단의 채상병 기록 이첩 때 이종섭 국방장관과 개인 휴대폰으로 3차례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록이 회수돼 임 소장 등이 피의자에서 빠졌다.
민주당 등 야권은 대통령실이 개입한 정황 등을 수사하는 특검법을 처리했지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