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신탁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결혼 형태가 다양해지고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제도 개선에 대한 여론이 높지만, 법 개정 전까지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끼리 유산을 받을 대상을 미리 정해놓으면 어느 정도 상속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8일 민법 1003조 1항 중 '배우자'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민법 1003조는 배우자가 망인의 부모나 자녀(직계존·비속)와 같은 수준으로 상속권을 갖고, 법에서 정한 비율만큼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 등 상속인이 없으면 배우자는 단독상속인이 된다. 하지만 민법 조항상 배우자는 법률혼 배우자일 뿐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청구인은 법원에서 배우자와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았는데도 사별 후 사실혼 배우자에게 숨진 배우자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부여하지 않는 민법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헌재는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상속과 같은 법률관계에서는 사실혼을 법률혼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으므로 상속권 조항이 사실혼 배우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0년 전인 2014년 사실혼 배우자에 대해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선례를 이번 사건에서도 적용한 것이다.
사실혼 관계가 성립하면 원칙적으로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동거, 부양, 정조의무가 인정된다. 이혼할 때도재산분할청구권 및 위자료 청구권이 인정된다. 반면 사실혼 배우자가 생존할 때와는 달리 한 사람이 사망하면 상속권 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법적 한계가 있다.
헌재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혈연과 법적 혼인으로 맺어진 전통적인 가족 형태에서 벗어나 사실혼 등 새로운 유형의 가족 형태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저출산 인식 조사 개요'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사실혼 등 여러 형태의 결혼 제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현행법은 아직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홀로 남겨진 배우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헌재 판단으로 당분간 해당 법 제도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실혼이 급증하는 현실을 반영해 일방 배우자 사망 시 상속재산 보호를 위해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가 본인 재산을 금융기관에 맡기고 생전에는 위탁자가 원하는 대로 관리하다, 사망 이후에는 생전에 미리 정해둔 방식으로 수익자에게 상속을 진행하는 방식를 말한다.
물론 해당 신탁은 '사실혼 배우자'만 상속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 사실혼 관계고 어느 한쪽에 다른 이에게 유산을 주고 싶은 의지가 큰 경우가 많은 만큼, 신탁을 통해 사전에 조치해둘 수 있다는 뜻이어서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한 대응책으로 꼽힌다.
법무법인 바른에서 상속신탁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조웅규 변호사(사법연수원 41기)는 "유언대용신탁은 법적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재산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실혼 배우자에게 상속에 관한 유언을 남기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며 "만약 숨진 배우자가 상속개시로부터 1년 이전에 (남은 배우자에게) 유언이나 증여를 했다면, 유류분반환 청구소송에서는 다소 자유로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신탁이 법적 상속인들의 유류분을 침해한다는 걸 남은 배우자가 알고 있었다'는 점을 다른 가족들이 입증하지 못하면 해당 유산은 유류분반환 대상에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만 현행법상으로는 사실혼 배우자 어느 한쪽이 유산을 어떻게 할 지에 따라 남는 사람에 대한 상속 여부가 결정되는 게 현실"이라며 "미리 재산을 상속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현행법으로는 (유언대용신탁 등을 하지 않았다면) 보호할 방법이 없다.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