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손해 배상 책임 엄격히 제한한 대법원 판결에 위헌 소송 낸 전상화 변호사

한석진 기자 입력:2020-02-14 22:54 수정:2020-02-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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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공무원과 달리 법관은 위법 부당한 목적이나 중과실 경우만 국가에 의한 배상 책임 인정한 것은 잘못"

  • "일반 공무원처럼 '고의나 과실' 로 위법 판결한 경우 배상 책임 인정돼야"... 헌법재판소 결정 결과 주목

"법관은 재판을 잘못해 원고나 피고에게 손해를 입혔더라도 위법 부당한 목적을 갖고 재판을 했거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국가가 그 법관이 입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대법원이 지난 20여년 동안 유지해온 판례다. 일반 공무원들은 단순한 고의 과실로 손해를 입혀도 국가에 의한 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과 다르다. 이 대법원 판례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헌법재판소가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은 전상화 변호사다. 전 변호사는 지난달 2일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및 이 조항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일 "이 사건을 전원 재판부로 넘겼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심판 청구서가 접수되면 적법 요건을 심사해 청구가 부적법하면 각하 결정을 하고, 적법하다고 판단하면 본안에 회부한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에 소재한 전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헌법 소원을 제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지난 2017년 건물주한테 건물인도청구를 당한 세입자로부터 사건을 수임했는데 담당 판사의 잘못으로 패소 판결을 받았다. 때문에 변호사 성공보수 등과 같은 경제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업무역량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같은 무형적인 손해도 입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2017년 12월 경 대한민국과 당초 건물인도청구 소송을 맡았던 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번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맡은 판사가 직권으로 2018년 6월 26일 소송비용담보제공명령(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로 10일 이내에 금 900만원을 현금 공탁하라)을 발하였다. 나의 청구원인이 주장 자체로 이유 없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번 손해배상청구가 판사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지 소송을 제기하여 판사를 괴롭히는 상황인가, 나의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가, 10일 안에 900만원의 현금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민은 재판 받을 권리조차 없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위 소송비용담보제공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를 제기하였으나 기각되었고 다시 대법원에 재항고하였으나 역시 기각되었다.

위 각 사건에서 나의 주장을 배척하기 위하여 법원이 끌어다 쓴 판례는 전부 대법원ᅠ2003년 7월 11일ᅠ선고ᅠ99다24218ᅠ판결이었다. '법관이 재판에 법령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재판상 직무행위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말하는 위법한 행위로써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거나 법이 법관의 직무 수행 상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하는 등 권한을 명백히 어긋나게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른 공무원들과는 달리 유독 법관만은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까지 있어야'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 앞에 평등'을 규정한 헌법과 국가배상법의 명문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그래서 위 대법원 판례의 위헌성 여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보고자 이 사건 헌법소원을 하게 되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에서 담당 판사가 어떤 잘못을 했나?

지난 2017년 2월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세입자가 “자신이 임대인에게 월세를 미납했다는 이유로 임대인으로부터 건물인도 소송을 당했다”며 나를 찾아왔다.

상담 중 세입자가 미납한 월세는 3개월 치가 안 되며,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 체결당시 ‘3기분(3개월치)의 월세를 미납해야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까지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미납한 월세가 3기분(3개월치)이 안 된다는 것만 입증하면 승소할 수 있다”며 세입자의 사건을 수임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8항에 의해 임차인(세입자)의 차임연체액이 3개월 치의 월세에 달하는 때에 비로소 임대인(건물주)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세입자에게 각종 금융거래내역 정리 분석, 현금 영수증의 수색 등을 요청하고, 법원에 변론 종결된 사건의 변론재개를 요청하여 월세를 미납한 게 3개월 치가 아니라 2개월 치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였고, 당연히 승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판사는 세입자가 3개월 치 이상의 월세를 미납했는지 여부에 대한 세입자의 입증 결과를 보고, 그에 따라 판단하기만 하면 해결될 아주 간단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는 원고인 건물주의 손을 들어 주었다. 세입자가 2개월 치 이상의 월세를 미납하였고 따라서 임대차계약 해지는 적법하다는 것이다.

이는 “3개월 치 이상의 임대료를 연체하는 경우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특약뿐만 아니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명문 규정에도 위배되는 판결이다.

- 그렇다면 항소심에서 판사의 실수를 바로잡으면 되지 않는가?

해당 사건의 세입자에게 “이 사건은 승소할 수 있다”고 상담했는데 1심에서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 사건을 맡은 판사의 실수 때문에 신뢰가 깨졌는데 어떻게 의뢰인이 이 사건의 항소심을 나한테 맡기겠는가. 게다가 적법하게 1심 판결을 했으면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을 2심, 3심까지 가도록 한 피해는 전부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몫이기도 하다.

-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우리 헌법은 공무원이 불법행위를 저지를 경우 관련 법률에 따라 국가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즉 관련법인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①고의 또는 과실 ②위법행위 ③손해의 발생이라는 3가지 요건이 구비되면 불법행위가 성립하고 그 행위자가 국가공무원인 경우에는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법원 판례 때문에 유독 법관만은 '실수'(과실)를 해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고, 아주 중대한 실수(중과실)를 했을 때만 책임을 지며, 나아가 '고의'로 위법하게 재판을 해도 '위법 부당한 목적이 없는 이상' 전혀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졌다. 법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스스로 법관들을 '책임지지 않는 특권 계급'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법관이 재판하면서 법에 위반하여 재판한다는 것을 알고(고의) 재판했더라도 불법행위가 되지 않고, 가령 법관이 승소한 당사자로부터 뇌물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또는 패소한 당사자를 골탕 먹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했다거나 이에 상응하는 ‘특별한 사정’을 그 재판의 피해자가 입증한 경우에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법관의 재판과 관련해서는 민사상 책임도 추궁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이 과연 법 앞에 평등한 것인가? 게다가 '고의'로 법을 위반하여 재판을 하더라도, 민사상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는 판례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과연 재판권 남용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국민들은 불법행위에 관한 3가지의 요건이 구비가 되면,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하며, 일반 국민들은 ‘민법’ 공무원들은 ‘국가배상법’으로 그 규율하는 법률만 차이가 있을 뿐이고 그 요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 대법원 판례 때문에 유독 법관만 그 국가배상법의 규정과 다른 요건(고의+위법 부당 목적 또는 중과실) 아래에서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가 결정된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 이 대법원 판결이 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무효임을 확인받아야 하는가?

이번 사건들과 관련해서 나의 주장을 배척하기 위해 인용된 판례가 전부 위 대법원ᅠ판결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는, 우리나라 법관수가 약 3000여명인데, 상반기에만 2000여건이 넘는 법관 상대 진정서 등이 접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시 말하면 위 대법원 판결이 이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건에서 법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계속해서 막아주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언급한 소송비용담보제공명령이나 기피신청 사건의 각 재항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미 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시한 상황이나 다름없다. 이는 법원과 동료 법관 보호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대법원 판례에 대한 합법성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잔인하게 집행하며, 서민들이 흘리는 피눈물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위 대법원 판례가 20여 년간이나 변함없이 존속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대법원 판례도 대법원만 바꿀 수 있고, 그것도 대법관 전원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에서만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비록 법원의 재판이지만 예외적으로 최종적인 헌법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국가기관의 헌법 위반 상태’를 종료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그 방안이 곧 위 대법원 판례가 위헌 무효임을 신속히 확인해 주는 것이다.

국민주권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에 의한 통치이고, 그 핵심은 국회(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에 의해 국민이 지배를 받는 법치주의인데 그 법에 위반하여 대법원 판례를 만들어 내고, 그 판례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면 이는 국민주권주의 내지 민주주의의 정신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고, 결코 ‘법치주의’라 할 수 없다. 게다가 국민들은 법의 지배를 받을 뿐이지, 판사들의 지배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 그런데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에서 위 판례를 예비적으로 청구했다. 이유가 있는가?

대법원 판례에 대한 헌재의 판단을 받고 싶지만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이 되지 않아 각하될 것을 우려해 부득이하게 국가배상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주위적으로 청구하고 위 대법원 판례에 대한 위헌성 여부를 예비적으로 청구하게 되었다.

예비적 청구란 주위적 청구가 기각될 시를 대비한 것으로 요컨대 '플랜B' 주장이다.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주위적 청구를 기각할 시 예비적 청구에 대한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

- 국가배상법은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솔직히 국가배상법 해당 조항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위 대법원 판례에 대해 헌재의 판단을 받아보고자 부득이 형식적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청구한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심판 청구로 ‘법관이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한 판결을 한 경우 국가배상이 인정될 수 있을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사진= 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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