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천지역 모 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가 모두 가동 중단됐는데, 장기수선충당금 부족으로 제때 아파트 부품을 교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아파트마다 장기수선충당금을 미리 적립해 놓게 되는데, 어떻게 이 돈이 다 소진된 걸까.
장기수선충당금이란 장기수선계획에 따라 아파트의 주요시설에 대해 수리, 교체, 조경, 도색 등과 부대시설, 복리시설 등 주요시설을 교체 및 보수하는데 필요한 돈을 충당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징수하는 특별관리비로, 그 근거는 공동주택관리법 제30조에 있다. 3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이나 승강기가 설치된 공동주택, 그리고 중앙집중식 난방방식 또는 지역난방 방식의 공동주택 중 하나에 해당하면 매월 징수해 적립해야 한다.
장기수선충당금과 유사하지만 구별되는 것으로 수선유지비가 있는데, 보통 전자는 아파트 자체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후자는 아파트 공용시설 유지보수를 위해 사용되는 소모성 지출 즉 수시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구별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장기수선충당금은 미리 적립해서 장차 건물이 노후화될 때 사용하는 비용이므로 건물 준공 후 10년 이내 건물의 경우 거의 사용될 일이 없는데도 중간에 수선유지비 등으로 소진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정작 10년이 넘어 아파트 건물이 노후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장기수선충당금이 아예 없어진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입주자들에게 장기수선충당금을 과다하게 부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를 통제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아무리 장기수선충당금 적립 계획을 잘 세워 금액을 적립해 왔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이 부족한 경우도 발생한다. 이유는 첫째,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불시에 아파트 주요 시설에 고장이 나거나 문제가 발생해 예상치 못하게 한꺼번에 적지 않은 비용이 지출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장기수선충당금이 수선유지비와 개념상 경계가 모호하다. 이 때문에 수선유지비로 그때그때 입주자들로부터 걷어 사용해야 함에도 별도로 걷지 않고 미리 모아둔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조금씩 쓰다 보니 결국 소진되고 만다. 그리고 셋째, 장기 수선 주기가 도래하더라도 이를 입주자들이 결의해 수선을 뒤로 미루는 바람에 결국 크게 고장이 나서 돈이 더 들어가는 일도 생긴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원래 ‘소유자’가 부담하도록 한 비용이지만, 실제로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자’가 관리비 형식으로 부담하게 된다. 그래서 입주자는 (살다가 퇴거하면 되므로) 당초 세운 장기수선계획을 바꾸면서까지 장기수선충당금을 늘리거나 추가로 적립하려고 하지 않는다. 가급적 이를 바꾸지 않음으로써 관리비 부담을 낮추려는 것이다. 이는 곧 장기수선충당금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하게 되거나 소진되는 걸 막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최초 장기수선계획을 세울 때 현실성 있게 세워야 한다. 최초 장기수선계획은 사업 주체가 작성해 이를 사용검사권자인 시‧군‧구의 장에게 제출하고, 사용검사권자가 이를 검토하게 돼 있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이 계획의 적정성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고 전문성이 떨어질 경우 잘못된 계획이 유지될 수 있어 최초 장기수선계획을 잘 세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해 장기수선충당금의 최소 적립기준을 마련하려 시도하는데 이를 위한 제도적 또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둘째, 장기수선충당금과 수선유지비의 구별을 엄격하게 해 장기수선충당금이 수선유지비로 사용되어 소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자를 구별하도록 지도, 감독할 수 있는 관할관청의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나아가 아파트 내 가급적 장기수선충당금의 사용을 자제하고, 필요할 때마다 수선유지비를 추가로 걷어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 내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장기수선충당금을 사용할 경우에는 입주자가 아닌 해당 아파트 구분소유자들의 동의를 일부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입주자 위주의 사용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장기수선충당금을 적립해 사용하는 70여개 항목이 있는데(공동주택관리법 시행규칙 별표1), 현재는 이 70여개 항목에 공사종별, 수선방법과 수선주기의 제한만 있을 뿐, 특별히 항목 간의 교차‧전용이 제한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엘리베이터 수선을 위해 적립해 둔 장기수선충당금이 옥상 방수를 위해 사용돼 결국 소진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용을 막는 제도적 또는 법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처럼 장기수선충당금은 현재가 아닌 먼 훗날 아파트의 미래를 위해 적립해 두는 돈이지 현재 입주자들을 위해 수시로 사용되는 쌈짓돈이 돼서는 안된다. 현실은 장기수선충당금이 소진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가 운영되고 있고, 법은 이러한 현실을 통제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 있다.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