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서울 시내 한 경찰서에서 만난 한 중년 부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한 일당의 전화 한 통에 아껴 모은 돈 3억2000만원을 사기 당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들은 담당 수사관에게서 몇 가지 안내를 받고 겨우 진정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수사기관이나 금융감독원 등을 사칭해 전화로 송금을 유도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면서 일선 경찰서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사건 직후 심리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 일선 경찰관들의 응대 방식을 바꾼 게 대표적이다.
4일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총책이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국제공조를 하지 않는 이상 피의자 검거나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 예전엔 피해자에게 이런 설명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사건을 접수할 때 “범죄자를 꼭 잡도록 한번 해보겠다”거나 “범인을 잡을 수 있다” 등의 얘기를 한다. 가뜩이나 보이스피싱에 돈을 잃고 충격을 받거나 자책을 하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경찰이 조금이나마 돕겠다는 취지다. 피해자 심리 보호에도 신경 쓰겠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피해가 급증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금감원이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분석’에 따르면, 1억원 이상 초고액 피해자가 전년 대비 69.9% 급증했다. 보이스피싱 전체 피해액도 전년보다 35.4%(514억원) 증가한 1965억원이었다.
경찰청은 일선 경찰관을 대상으로 민원인 응대 교육을 진행 중이다. 피해액 규모에 상관없이 사건 직후에는 수사관의 말 한마디에 피해자가 안정을 찾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따뜻한 한마디’를 하라는 게 경찰청 교육의 핵심 내용이다.
또 “잡을 수 있다”는 말을 자꾸 하면서 경찰관 스스로도 검거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수사 인력도 대폭 보강하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는 형사과에 보이스피싱 전담팀을 신설했다. 기존 지능팀이 소속된 수사3팀이 진행했지만 최근 관련 수사 역량을 확대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형사과는 통상 대면 범죄만 다루는데, 요즘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가 워낙 많아져 전체 대응력을 높인 것”이라며 “형사과 내부에 보이스피싱팀을 새로 만들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에 따라 의무화된 금융회사의 24시간 대응 체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미끼 문자 차단을 위해 안심마크 표기를 확대하는 한편 은행이 일정 부분 피해를 보상하도록 하는 자율배상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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