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충청남도가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이자 성폭행 피해자 김지은씨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김씨가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에 나왔는데 신체감정 과정에서 재판이 계속 공전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늑장 신체감정'이 도마에 올랐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씨가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김씨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입증을 위한 신체감정 절차 지연으로 1년 간 공전됐다.
2020년 7월 김씨는 "안 전 지사의 성폭행과 2차 가해로 PTSD를 겪었다"고 주장하며 총 3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안 전 지사의 지사직 수행 중 일어난 일이니 충청남도에도 책임을 물었다.
당시 김씨는 신체감정 의뢰 신청을 냈고 재판부가 5차례에 걸쳐 신체감정을 맡길 병원을 지정했으나 병원이 신체감정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체감정 결과가 나와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며 1년 가까이 재판을 열지 않았다.
신체감정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액을 산정할 때 진행한다. 원고의 신체상태를 평가 받아 일실수입, 치료비 등의 액수를 산정할 수 있다.
법조계는 신체 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아 재판이 공전되는 원인으로 신체감정을 병원에 강제할 수 없는 법원 예규를 꼽았다. 실제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병원에서 법원의 신체감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원 예규에 신체감정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병원에 신체감정을 의뢰하더라도 병원 측에서 이를 해주지 않으면 받아주는 병원이 있을 때까지 '뺑뺑이'만 돌릴 수밖에 없다"며 "감정해주겠다는 병원을 찾는다하더라도 감정 마감기한도 두고 있지 않아 병원에서 결과를 보내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아 민사재판이 지연되면 결국 국민의 재판청구권까지 침해할 수 있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최욱진 부장판사)는 24일 김씨가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가 8347만원을 공동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구체적으로는 안 전 지사 혼자 3000만원을, 안 전 지사와 충청남도가 공동으로 나머지 5347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김씨에 대한) 배우자의 2차 가해를 방조한 책임이 있고, 충청남도는 직무집행 관련성이 있어 국가배상법상 책임이 있다"며 "피고들의 불법 행위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발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김씨 측 대리인은 선고 직후 "배상 액수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치열하게 다퉜던 부분들이 인정돼 그 부분은 다행"이라며 "(안 전 지사가) 형사재판에서 사법부의 최종 판단까지 받았음에도 여전히 사법부의 최종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김씨에게 성폭행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을 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받고 2022년 8월 만기 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