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이원석 검찰총장이 거의 임기 내내 조용히 있다가 최근 갑자기 ‘김건희 여사 수사’ 문제를 두고 용산과 충돌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해 의문을 낳고 있다.
물론 김 여사 명품백 이슈가 공분을 사면서 수사 총책임자로서 책임감 있게 사건을 처리하려는 의도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후보가 정치에 뛰어들고 총선 기간 윤석열 대통령과 반목하자 공교롭게도 이 총장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아주로앤피 취재결과 이원석 검찰총장이 출퇴근길에서 기자들과 문답하는 이른바 ‘도어스테핑’은 5월 이후 8회로 급증했다. 5월과 지난달, 이달 각각 2·3·3회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탄핵에 반발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김건희 여사 엄정 수사’는 빠지지 않고 언급됐다. 물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이는 지난 2022년 9월부터 지난 5월까지 1년 8개월 동안 가진 도어스테핑 5회보다 훨씬 많은 횟수다. 취임 후 첫 출근길에서 ‘각오’를 밝힌 걸 빼면, 1년 8개월 동안 한 도어스테핑(4회)보다 지난 2개월 동안 한 횟수(8회)가 2배 더 많다.
사실상 그 동안은 침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한동훈 후보가 법무장관이던 시절이다. 상당 기간 “검찰총장이 한동훈인지 이원석인지 모르겠다”, “검찰총장은 어디로 사라졌나” 등의 평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 뭘 하다 갑자기 김건희 수사를 외치고 있을까. 실마리는 그의 취임 직후인 2022년 9월19일 첫 출근길 약식 기자간담회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한 장관(후보)이 기수 파괴 형태로 숱한 선배들을 제치고 임명됐고, 동기이자 친분이 있는 이원석 총장을 강하게 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임명된 이 총장은 첫 출근길에서부터 이렇게 말했다.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수사지휘권 문제는 현실적으로 법률상으로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다. 모든 사건을 증거와 법리에 따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데 저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일선 검찰청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다.”
사실 그는 취임 전 인사청문회 때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전임도 아닌, 전전임 장관이 내려놓은 검찰총장 지휘 문서 탓에 도이치 수사지휘를 총장이 못한다는 것이다.
그 전전임 장관은 놀랍게도 추미애 법무장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장이던 2020년, 부인이 연루된 도이치 사건은 윤 총장이 지휘하지 말라는 명령을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했다. 그게 아직 유효하다는 게 이원석 총장의 일관된 주장이다.
당시 대검 간부들은 “당시 추미애 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한 것 자체도 개별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지휘가 아니어서 법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거나 “한동훈 장관이 새로이 수사지휘에 나서는(추미애의 명을 거둬들이는) 대신 대검이 검찰총장이 변경돼 총장 수사지휘 배제 사유가 소멸했다’고 판단을 내릴지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영부인 수사는 ‘예우’와 ‘공정’을 모두 고려해야 해 까다로운 문제다. 지금까지 의혹은 크게 두 갈래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이른바 디올백 수수 사건이다. 이 중 디올백 수수는 대가성이 없고(뇌물죄) 배우자의 신고 의무도 없어(청탁금지법 위반) 기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건 법조계에서 상식에 속한다.
수사를 하려면 애초부터 제기된 도이치 주가조작 부분인데, 이 부분을 그 동안 추미애 장관 명을 받들어 ‘수사권 없음’ 처리하다가 이제 와서 김 여사 철저 수사를 외치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사권 없음)그거 이원석 총장의 논리죠. 지휘권이 왜 없어요. 검찰총장에게 사건 지휘권이 없으면 누구한테 있나요. 당시 윤석열 총장이 자기 부인을 수사하니까 그렇게 (수사 못하게) 한 거지, 민주당 정부 때의 장관 지휘인데 지금 왜 지휘권이 없어요. 총장이 하면 하는 거지.” (검찰 간부 출신, <'대쪽 총장' 우뚝 선 이원석, '기개'인가 '쇼'인가…"김건희 수사가 관건"> 기사 참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해서 총장의 지휘권이 배제됐다는 그 말 자체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총장의 지휘권 배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에 부인이 (수사) 대상자, 그러니까 총장의 부인이 대상자니까 이해관계자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사 지휘를 배제하는 결정을 했었던 거거든요. 그리고 그거를 윤석열 총장도 받아들였던 거고요, 그런데 지금은 총장도 바뀌었고 법무부 장관도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그 결정이 지금까지 유지된다는 것 자체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법률적인 판단을 서울중앙지검에서 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아주 법률가로서 이건 말도 안 되는 판단이다 이렇게 봐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러나 한동훈 후보도 법무장관 시절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총장 지휘 문서를 취소라도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엔 윤 대통령의 오른팔, 윤 정부 2인자로 불릴 때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후보는 지난 총선 때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서 윤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에 대해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김경률 비대위원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교했다. 정치에 뛰어들면서 비로소 윤 대통령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또 채상병 사건 관련해 호주 대사로 나간 이종섭 전 국방장관에 대해 한 위원장이 “즉각귀국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막은 두 특검(김건희‧채상병)에 대해 모두 윤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내비친 셈이 됐다. 실제 이번 전당대회에 나선 뒤에도 “제3자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을 야당과 별도 안으로 발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올해 상반기에 일어난 일이다. 공교롭게도 이 총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영부인 수사를 강조한 것과 한 후보가 정치에 뛰어들어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 시점이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이 총장은 지난해 말부터 ‘김건희 직접 수사’ 방침을 내비쳤다가 대통령실의 격노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로 출근하면서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대통령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진상을 파악하고 상응하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건희 여사를 제3의 장소인 종로구 창성동 대통령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전격 조사했다. 이른바 ‘출장 조사’를, 그것도 대통령실 관련 건물까지 검사가 가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총장에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하려던 송경호 전 지검장을 이 총장과 상의 없이 부산고검장으로 발령낸 뒤 윤 대통령이 후임으로 임명한 인물이다.
이 총장이 대국민 사과까지 하자 대통령실은 “검찰 내부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현직 대통령 부인 첫 대면조사로 특혜 주장은 과도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