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으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가해 차량 운전자의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 자격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기준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정한다면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들의 운전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내 15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운전자 A씨(68)는 40여년 운전 경력을 가진 버스기사로, 현재는 경기도 안산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다년간 운전을 해왔지만 60대 후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령자들의 운전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시청역 인근 회사에서 재직 중인 김모씨(34)는 "운전 자체를 전면 금지시키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 절차 등을 까다롭게 하거나 일부 제한할 필요는 있다"며 "다만 운전를 업으로 하는 직종은 승객 등의 안전을 고려해서라도 고령자의 운전을 금지시키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는 이들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야기한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로, 17.6%를 기록한 전년보다 늘었다.
이에 정부는 현재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3년으로 하고, 면허 갱신 땐 인지능력 검사 및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의 경우 교통안전교육이 권장 대상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위험군 운전자를 대상으로 야간 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의 조건을 걸어 면허를 허용하는 '조건부 면허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이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하루 만에 거둬들였다. 하지만 이번 시청역 사고로 조건부 면허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 되는 모양새다.
법조계는 미국, 일본 등 고령 운전자의 운전 허가를 제한적으로 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를 고려했을 때 세밀한 기준을 세워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관영 법무법인 라움 변호사는 "단순히 '고령'이라는 연령만으로 운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평등권,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을 침해할 수 있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고령자 중에서도 운전하기 어려운 분, 즉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야간 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의 조건을 제한하는 것은 광범위하게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조건부 면허제 정책이 조건이 너무 광범위 하고 세밀하지 못하다면 위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 해당 정책을 도입할 경우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정책을 만들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27분께 A씨가 운전하던 제네시스 차량이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후 일방통행 4차선 도로를 역주행하다 왼편 인도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9명이 숨지고 A씨와 A씨 아내를 포함해 6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 9명 중 6명은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3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A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정용우 서울 남대문경찰서 교통과장은 "사실관계 확인 등 엄정하고 신속하게 수사하겠다"며 "사건을 진행하면서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다각도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아직 정확한 사고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으나 A씨가 음주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차량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