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친족 사이에 일어난 재산 범죄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형법의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제정 71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7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위헌 확인 소송 4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심판대상 조항은 재산범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일정한 친족관계를 요건으로 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넓은 범위의 친족 간 관계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판 대상 조항은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며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했다.
형법 328조 1항은 직계혈족과 배우자, 동거 친족과 그 배우자 간 발생한 사기‧공갈‧절도‧횡령‧배임‧장물‧권리행사방해 등 재산범죄의 형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은 가족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법언에 따라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 등 가까운 친족 사이의 재산 범죄에 국가가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다.
하지만 도입 70년이 넘으면서 그 사이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고 친족간 유대가 옅어져 친족상도례 규정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친족상도례 규정을 폐지할 경우 가족간 문제가 지나치게 형사사건화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가령 생활비를 주지 않는 남편의 지갑에서 아내가 소액의 생활비를 훔쳤을 때 수사기관이나 국가형벌권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취지다.
친족상도례 규정은 방송인 박수홍씨 등 유명 스타들이 가족간 재산 분쟁을 겪는 피해 사례가 늘어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박수홍씨 친형이 박씨의 수익금을 횡령한 사건에서, 박수홍씨 아버지가 "자금관리는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있었다. 기존 조항대로면 같이 살지 않는 형은 처벌 대상인 반면 직계인 부친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친족상도례를 악용해 처벌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만 헌재는 이날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을 제외한 친족이 저지른 재산 범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정한 형법 328조 2항에 대해서는 합헌으로 결정했다.
해당 조항에 대해서도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법조계는 "친고죄의 경우 피해자가 범인을 인지한 후 6개월 내 고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친족인 가족이 고소를 미뤄달라고 호소했다가 6개월 기간을 넘겨 고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에 대해 "고소를 소추 조건으로 규정해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국가형벌권 행사가 가능하게 한 조항에 대한 것"이라며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침해 여부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날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이 조항의 적용은 중지되고 2025년 12월 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 국회는 형법 개정과 함께 형사소송법 제224조(고소의 제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부모 등)을 고소하지 못한다) 등 전통의 틀에 묶인 관련 법조항을 함께 개정 논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