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 '임시 판사' 맡는다?…국민참여재판 이어 '참심제 도입' 논란

남가언 기자 입력:2024-05-20 16:13 수정:2024-05-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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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법원 설치 때 제도 '첫 도입' 주목

  • 일반 노사 대표자가 판사 함께 판결

  • "'법관만 재판' 헌법에 어긋나" 지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반인이 사실상 ‘법관’이 돼 판사와 함께 판결하는 제도가 국내에 도입될지 법조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하고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노동법원 신설 과정에서 이 제도 도입이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20일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실질적으로 사용자에 의사에 따라 결정돼 왔다”며 “근로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노동법이 등장한 만큼 노동사건은 사건 당사자인 노사 대표가 참심관으로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게 맞는다”고 밝혔다.
 
참심제(參審制)는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다. 일반 시민 중에서 발탁된 참심관이 전문 법관과 함께 사실인정 및 양형 판단을 하며 독일과 프랑스 등이 채택하고 있다.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또 다른 형태로는 배심제가 있는데 영국과 미국 등이 운용 중이며 사실에 관한 판단만 하고 형량은 법관이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국내 사법시스템에 맞게 수정한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두고 있다. 국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해 법정 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토의하면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 판결을 선고하는 방식이다. 이때 재판부가 배심원 결정을 따라야 할 강제성은 없다.
 
만약 노동법원 신설과 함께 여기에 참심제가 도입되면 일반인이 법관의 지위까지 오르게 되는 최초의 제도 도입이 이뤄지는 셈이다.
 
그러나 위헌 논란이 참심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헌법 제27조엔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즉 일반인이 직업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해 법률심에 관여하면 헌법상 '법관에 의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노동전문 변호사는 “참심제는 참심관에게 의결권까지 주는데, 직업 법관이 재판을 주도한다고 하더라도 참심관이 법관과 거의 동일한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헌 소지가 높고 국민적 공감대도 부족하다”며 “참심관에게 의견 제시권 정도만 주는 준참심제가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입론자들은 독일 헌법(기본법) 101조에도 “법률로 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지만 참심제를 도입했고 합헌 결정도 나온 바 있다고 반박한다.
 
반면 법관의 신분을 헌법과 법률(법원조직법)에서 촘촘하게 정해놓은 한국과 달리 독일 기본법엔 노동법원 법관의 범위를 탄력적으로 정하도록 해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법관의 정년은 법률로 정한다”(헌법 105조) 등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일시적이라 해도 일반인의 참심관 역할은 결국 ‘일반인의 재판’을 의미하므로 명백한 위헌이라는 논리도 가능하다.
 
각계 여론이 수렴될지, 또 막대한 예산 집행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지도 노동법원 설립 자체에 변수로 꼽힌다. 노동법원 설치는 1989년부터 논의돼 왔지만 번번히 무산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5개 고등노동법원과 8개 지방노동법원 등 노동법원 13곳을 설치한다고 가정했을 때 2025년부터 5년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최소 118억 원에서 최대 1조1387억 원에 이른다. 재계 관계자도 "참심형 노동법원을 도입할 경우 노동법원이 노사 간의 새로운 갈등의 장만 될 뿐"이라고 우려했다. 노동 전문법원이 신설되면 아무래도 노동자 친화적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재계의 시선이다. 
 
다만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보이고 법원이 환영하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노동법원 신설이 어느 때보다 가시권에 들어온 건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제25차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우리 사회도 노동법원 설치가 필요한 단계가 됐다"고 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 멀쩡히 돌아가거나, 기업이 망했는데 (사장이) 자기 재산만 따로 챙기고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반사회적 정도가 아니라 반국가 사범"이라며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법무부, 필요하면 사법부와도 협의해서 제 임기 중에 노동법원 설치 관련 법안을 낼 수 있게 지금부터 빨리 준비해달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법 위반만 다루고, 해고가 공정했냐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법을 위반해 민사상 피해 입었을 때 원트랙으로 같이 다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체불 임금이나 노동자들의 피해, 또 더 큰 이슈들을 종합적으로 다루도록 노동법원의 설치를 적극 검토할 단계가 됐다"고 설명했다.
 
노동법원에 반대 입장이던 고용노동부도 ‘태세 전환’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6일 민생토론회 후속 브리핑에서 노동법원 설립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 장관은 "노동법원의 설치는 사법시스템의 큰 변화가 수반되어 깊이 있는 준비가 필요한 만큼, 임기 내 추진될 수 있도록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물론 법원 등 사법부와 협의도 조속히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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