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잔혹사③] '총장→수석→장관' 무게 추 급격 이동…방패막이 잃은 검찰

홍재원 기자 입력:2024-05-17 10:30 수정:2024-05-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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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재 "총장 의견 다 받아들여야 하나"

  • 우병우가 '수석', 추미애가 '장관' 키워

  • 외압 막아줄 사람 없어…"기본 지킬밖에"

 
박성재 법무장관 [사진=연합뉴스]


“총장이 인사를 언제 해달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여야만 인사를 할 수 있는 겁니까.”
 
박성재 법무장관이 16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인사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했지만 자신이 무시했다는 것이다.
 
인사 내용에 대해서도 박 장관은 “다 협의했다”고 했지만 “인사 자체를 새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후로 미뤄달라”는 게 이 총장 요청이었다는 점에서 검찰총장이 의견 개진조차 하지 않은 쪽에 가까워보인다.
 
중수부 폐지 후 검찰총장을 무력화하는 기법은 다양해졌다. 이 과정에서 힘의 축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현재 법무장관으로 완전히 옮겨갔다.
 
중수부 없는 첫 총장이던 채동욱 총장은 2013년 법무부 감찰 개시에 따라 취임 5개월 만에 바로 옷을 벗었다. 표면적으로는 혼외자 보도가 계기였지만 국정원 댓글개입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하려다 청와대 눈 밖에 났다는 게 정설이다. 채 총장은 훗날 “(청와대가) 법대로 수사하라고 했는데 눈치 없이 진짜 법대로 하다 쫓겨났다”고 회고했다.
 
후임인 김진태 검찰총장 때 바로 그 우병우 민정수석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 ‘노무현 수사’ 후폭풍으로 검사장을 못 달고 검찰을 떠났다. 40대였던 그는 아직 젊었고 권력욕이 상당했고 또 검찰 일선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잘 알았다.
 
그는 총장뿐 아니라 심지어 서울중앙지검장까지 건너뛰고 당시 중앙 3차장과 직거래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절친한 사이인 최윤수 3차장, 또 이듬해엔 그 후임인 이동열 3차장과 긴밀하게 연락하는 사이였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중수부 이후 최고 수사력을 자랑하는 특수1~4부를 지휘한다. 법무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당시 “요새는 민정수석하고 3차장이 직거래한다는데 이래도 되는 거냐”며 한탄하기도 했다.
 
검찰총장은 도로 건너 다른 건물에 있고 인사권도 없다. 반면 검사 인사권은 대통령에 있다. 검찰을 모르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대신해 우병우 수석이 인사권을 행사한다. 촘촘하게 전화를 걸고 비서관과 행정관까지 나선다. 검사 입장에서는 총장보다 우 수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진태 총장은 기수 차이가 많이 나는 우 수석을 애써 무시했지만 결국 우 수석이 인사권과 특별수사 수사지휘권을 장악한 형국이 됐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우 수석이 ‘민정 라인’을 만든 건 사실”이라며 “그 자체가 대단한 거고 검찰 사상 최초로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그 전엔 총장이 ‘절대권력’이었고 법무장관 라인 정도가 한켠에 있었다면 ‘수석 라인’은 초유의 일이란 설명이다.
 
‘우병우 기법’은 나중에 문재인 정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정수석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앉혀 검찰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조국은 검찰을 몰랐다. 법무장관 자리까지 올랐지만 힘 한번 못 써보고 낙마했다.
 
추미애 장관은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으로 힘의 추를 확실하게 옮겨 놓은 인물이다. 법무장관으로서 인사권에 ‘검찰총장 지휘권’까지 활용해 철저히 총장을 무력화했다.

추 장관은 2020년 1월 검찰 인사 때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패싱’한 데 대해 검사 출신 정점식 의원이 “(검찰총장 의견을) 전혀 듣지도 않은 채 인사를 강행했습니다. 검찰청법 34조를 위반한 인사라는 거죠”라고 묻자 “제가 위반한 것이 아니고요.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항변해봤지만 추 장관은 그해 6월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하며 "검찰총장이 며칠 전 제 지시를 어기고, 제 지시를 절반 잘라 먹었다"며 "장관 지휘를 겸허히 받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이런 식으로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제가 '내 말 못 알아 들었으면 재지시 하겠다'고 했다"며 웃었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ㆍ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ㆍ감독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잘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15년 만에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대사건'이다. 2005년 10월 천정배 당시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강정구 교수 불구속’을 지시하자 김종빈 총장은 이를 수용하면서도 사표를 냈다.
 
역설적인 건 추 장관이 그해 10월 내놓은 또 다른 수사지휘는 지금까지도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총장은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대검찰청 등 상급자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아니하고 독립적으로 수사한 후 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을 지휘함.”
 
여기에 적시된 5가지 사건 중 ‘도이치모터스 관련 주가조작 및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특혜 의혹 사건’이 들어 있다. 윤 총장 부인인 김건희 여사 관련이란 것이다. 윤석열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이 지휘를 풀어줄리 만무해, 지금도 이원석 총장은 이 사건을 직접 지휘 못한다. 
 
한 마디로 인사권과 수사지휘권을 가진 법무장관이, 예전 검찰총장의 굵직한 권한을 다 넘겨받은 형국이 됐다. 중수부 폐지 후 불과 10여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동훈 법무장관도 사실 이런 권한을 누렸다고 볼 수 있지만 박성재 장관은 총장보다 10기수 선배인 ‘왕 장관’으로서 확실하게 검찰을 휘어잡을 만한 위치에 있다.
 
결국 대통령의 참모인 장관을 고리로 삼는 '대통령과 정치권력의 외압'에서 검찰 독립성을 보호해줄 방패는 사라진 셈이다.
 
물론 권력의 눈치를 보던 검찰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비판이 많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검찰의 정치 중립을 보장할지에 대한 답을 내놓는 사람은 드물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대안이라고 보는 법조인도 별로 없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재 검찰로서는 법리와 증거에 따라 원칙대로 수사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원석 총장이 ‘아무도 신경도 안 쓰는 총장의 사표’ 대신 “원칙대로 수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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