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의 거취를 두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민의힘은 전 위원장을 두고 문재인 정부의 ‘알박기 인사’라고 규정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며 맞섰다.
이날 송준석 국민의힘 의원은 “평산마을에 내려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현 정부 사퇴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있는 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자 전 위원장은 “공적으로는 이 정부에 몸담은 사람으로 공적인 업무에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앞서 6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은 있다”며 전 위원장의 국무회의 배제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실제로 전 위원장은 이후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아주로앤피는 전현희 위원장을 포함한 역대 공공기관 기관장의 임기 논란을 법원 판례 등 '법의 눈'으로 살펴봤다.
공공기관 기관장의 임기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정부때 논란이 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케이스가 있다.
2006년 11월 노무현 정부때 연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해임됐다.
방송법을 보면 본래 정 사장의 임기는 2009년 11월까지 이어져야 한다.
KBS(한국방송공사) 사장의 임기는 과거 한국방송공사법 제9조 1항(이사장을 포함한 이사의 임기는 3년으로 한다)에 규정됐었지만, 2000년 이 법이 방송법으로 통합되면서 방송법 제50조에 규정돼있다.
방송법 제50조(집행기관) 1항 공사에 집행기관으로서 사장 1인, 2인 이내의 부사장, 8인 이내의 본부장 및 감사 1인을 둔다. 6항 집행기관의 임기 및 결격사유에 대하여는 제47조(임기는 3년) 및 제48조의 이사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2008년 8월 11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정연주 KBS 사장 해임안에 서명했다. 이는 8일 한국방송공사 이사회가 제출한 정 사장 해임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2008년 6월 정 사장에 대한 특별 감사가 있었는데, 감사원은 “법인세를 너무 많이 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고 결과를 발표했다.
제355조(횡령, 배임) 1항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항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 사장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뿌리째 흔들고 민주주의 가치를 내팽개치는 일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없이 했다”며 “공영방송의 독립성 보다 KBS를 정권의 홍보기관으로 확보하는 일이 더 시급했던 것 같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당시 ‘사장은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방송법 제50조 2항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을 ‘임명과 면직’으로 해석해 정 사장을 해임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1999년 방송공사법(후에 방송법으로 통합)의 ‘임면(임명과 면직)’을 ‘임명’으로 바꿔 대통령의 면직권을 없앴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해임은 명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은경 장관 환경부 블랙 리스트’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2019년 3월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을 대상으로 사표 제출을 종용한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임원의 동향 등을 파악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 공공기관장들을 국무회의에 부르지 않고 있다. 동시에 여권은 전 위원장과 한 위원장에게 사퇴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지난 7월 홍장표 전 KDI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사퇴했고 이석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장은 지난 17일 사의를 밝혔다.
대법원에서 정연주 KBS 전 사장의 해임이 무효라는 판단이 나왔다.
2012년 2월 대법원 3부(신영철 대법관)는 정 전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무효 소송에서 “해임처분을 취소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정 전 사장은 2003년 6월부터 재직했다. 그러나 2008년 감사원은 부실 경영을 이유로 들어 KBS 이사회에 그를 해임하라고 요구했고 KBS 이사회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해임된 정 전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모두 “정 전 사장의 해임에 법적인 하자가 있다”며 정 전 사장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에서도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법인세를 너무 많이 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위를 했다”는 감사원의 판단이 무리라고 본 것이다.
승소한 정 전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법을 어긴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본인과 국민 앞에 마땅히 사과하고 이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1월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김은경 전 장관의 징역 2년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안철상 대법관)는 지난 1월 2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 공동정범, 증거재판주의 등에 관한 법리 오해나 판단누락, 이유모순 등의 잘못이 없다”고 김 전 장관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의 사표 제출 행위가 직권 남용이라고 본 1·2심 판결이 맞는다고 본 것이다.
제123조(직권남용)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 전 장관은 2017과 2018년 사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고 공모직 채용 과정에서 청와대 추천 후보자가 임명되도록 개입한 혐의로 2019년 4월 재판에 넘겨졌다.
김 전 장관의 의혹은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현 국민의힘 소속 강서구청장)이 2018년 말 특감반과 관련해 폭로하며 드러났다.
지난 18일 이완규 법제처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공공기관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기존 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되도록 해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사례에 대해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원래 정부와 국정운영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정무직으로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임기제로 운영해 인사 충돌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움직여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조례를 통해 단체장·정무직 등 임기를 일치시켰다.
지난달 11일 홍 시장은 페이스북에서 “정무직과 산하단체장 임기를 선출된 단체장 임기와 일치 시켜 알박기 인사를 금지 하도록 하고 더이상 블랙리스트 논쟁이 없도록 대구시는 이번 시의회 첫 회의에서 단체장·정무직,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 시키는 조례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 29일 발의된 조례를 보면 기관장 임기를 2년으로 통일하고,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시장의 남은 임기에 맞춰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대구광역시 정무ㆍ정책보좌공무원, 출자ㆍ출연 기관의 장 및 임원의 임기에 관한 특별 조례 제5조(임기) 1항 시장이 임명하는 정무·정책보좌공무원은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는 경우 시장의 임기가 개시되기 전 그 임기가 종료되는 것으로 본다. 2항 출자·출연 기관의 장 및 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는 경우에는 남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임기 개시 전 그 임기가 종료되는 것으로 본다. 3항 제2항에도 불구하고 출자ㆍ출연 기관의 장 및 임원의 임기를 관계 법령에서 달리 정한 경우에는 그에 따른다.
대전시 또한 산하 공사·공단과 출연 기관장의 임기를 시장 임기와 맞추기로 했다.
지난 8일 대전시에 따르면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조례를 정하기로 했다. 그 시행은 이르면 내년 1월 1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