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과정에서, 향후 상대방에 대하여 이혼 절차에서 각 정한 사항 이외에는 이혼과 관련된 재산분할 청구를 하지 아니한다는 이른바 ‘청산조항’을 기재한 경우에도, 상대방 배우자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수령하는 연금을 자신에게 분할해 달라고 청구할 수 있을까.
2. 사실 관계
가. A는 1997. 11. 5. B와 혼인하고 그 사이에 자녀를 두었다. A는 2016. 9. 19. B를 상대로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 등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B도 이혼, 위자료 및 재산분할 등을 구하는 반소를 제기하였다.
나. 소송 진행 중에 최종적으로 분쟁을 종결하기 위해서 상호 양보하여 이 사건 조정에 합의하였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A와 B 사이의 분할대상 부동산은 조정조항 제2항에 기재된 아파트(A와 B의 공유 지분 각 1/2)가 유일한 것이었다.
다. A와 B는 조정 당시 쌍방의 재산분할 청구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재산분할 내용을 조정조항 제2항 내지 제4항에 명시한 다음, 조정조항 제8항에서 나머지 본소청구와 나머지 반소청구를 각 포기한다는 이른바 ‘포기조항’에 더하여, 조정조항 제9항에서는 향후 상대방에 대하여 위에서 정한 사항 이외에는 이 사건 이혼과 관련된 재산분할 청구를 하지 아니한다는 이른바 ‘청산조항’을 명시하였다(이하 ‘이 사건 청산조항’이라 한다).
라. 조정조항 제9항에는 ‘A와 B는 향후 상대방에 대하여 위에서 정한 사항 이외에는 이 사건 이혼과 관련된 재산분할 청구를 하지 아니한다’고 기재되어 있을 뿐, A의 분할연금수급권을 위 ‘청산조항’의 적용을 받는 재산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명시적 기재는 없었다.
마. 한편, B는 재산분할로 위 아파트의 A 공유지분을 이전받는 대신 A에게 1억 7,000만 원을 지급하고, 자녀의 양육을 B가 하면서 양육비까지 모두 B가 부담하기로 합의하였다.
바. A는 이 사건 조정이 성립된 후 2017. 11. 1. 국민연금공단에게 국민연금법 제64조의3에 따른 분할연금 선청구를 하였다. B는 2017. 11. 9. 공단에게 이혼 조정조서와 함께 국민연금법상 연금에 대한 B의 분할 비율이 100%, A의 분할 비율이 0%로 된 ‘연금 분할 비율 별도결정 신고서’를 제출하였다. (즉, A는 B의 연금을 분할해 달라고 청구하고, B는 응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사. 공단은 2017. 11. 9. B에게 이 사건 조정조서에 연금의 분할 비율이 별도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분할 비율 별도결정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통지하였다(이하 ‘이 사건 거부처분’이라 한다). 즉 공단은 A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아. 이에 B는 공단의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및 2심 법원은 공단의 결정과는 반대로, 이 사건 청산조항에 따라 B의 연금 분할 비율이 100%, A의 분할 비율이 0%로 결정되었다고 보아 이 사건 거부처분을 위법하다고 보았다. 즉 1심 및 2심 법원은 B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 공단은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대법원의 판단은 어떠하였을까.
3. 판결 요지
가. 서언
(1) 국민연금법 제64조 제1항은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인 자가 배우자와 이혼하였을 것(제1호), 배우자였던 사람이 노령연금 수급권자일 것(제2호), 60세가 되었을 것(제3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면 그때부터 그가 생존하는 동안 배우자였던 자의 노령연금을 분할한 일정한 금액의 연금(이하 ‘분할연금’이라 한다)을 받을 수 있다.’고 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분할연금액은 배우자였던 자의 노령연금액(부양가족 연금액은 제외함) 중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균등하게 나눈 금액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한편 국민연금법 제64조의2 제1항은 “제64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839조의2 또는 제843조에 따라 연금의 분할에 관하여 별도로 결정된 경우에는 그에 따른다.”(이하 ‘이 사건 특례조항’이라 한다)라고 정하면서, 같은 조 제2항은 “제1항에 따라 연금의 분할이 별도로 결정된 경우에는 분할 비율 등에 대하여 공단에 신고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2) 국민연금법 제64조에 규정된 이혼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은 이혼한 배우자에게 전 배우자가 혼인 기간 중 취득한 노령연금 수급권에 대해서 그 연금 형성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여 청산·분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가사노동 등으로 직업을 갖지 못하여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배우자에게도 상대방 배우자의 노령연금 수급권을 기초로 일정 수준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헌법재판소 2016. 12. 29. 선고 2015헌바182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이는 민법상 재산분할청구권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국민연금법에 따라 이혼배우자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직접 수령할 수 있는 이혼배우자의 고유한 권리이다.
원칙적으로 일정한 수급요건을 갖춘 이혼배우자는 국민연금법 제64조에 따라 상대방 배우자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노령연금액을 균등하게 나눈 금액을 분할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사건 특례조항에 따라 협의상 또는 재판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절차에서 이혼당사자의 협의나 법원의 심판으로 연금의 분할 비율에 관하여 달리 정할 수 있다. 이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개별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헌법재판소 2018. 4. 26. 선고 2016헌마54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3) 이러한 국민연금법상 이혼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의 법적 성격과 이 사건 특례조항의 내용과 입법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특례조항에서 정한 ‘연금의 분할에 관하여 별도로 결정된 경우’라고 보기 위해서는, 협의상 또는 재판상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절차에서 이혼당사자 사이에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을 달리 정하기로 하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었거나 법원이 이를 달리 결정하였음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이와 달리 이혼당사자 사이의 협의서나 조정조서 등을 포함한 재판서에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이 명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재산분할절차에서 이혼배우자가 자신의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분할 비율 설정에 동의하는 합의가 있었다거나 그러한 내용의 법원 심판이 있었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아니 된다.
나. 원심 판단의 요지
(1) 이 사건 특례조항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이혼당사자가 민법상 재산분할청구를 하면서 어느 한쪽 배우자가 자신의 연금수급권을 포기하고 다른 한쪽 배우자에게 온전히 귀속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2) A와 B는 이 사건 조정 당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자신들의 국민연금법상 연금수급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혼 시 재산분할 과정에서 이러한 연금수급권을 다른 부부공동재산(누락되거나 은닉된 재산을 포함한다)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
(3) 이혼당사자가 재산분할에 관하여 조정을 하면서 이른바 ‘청산조항’을 두는 경우 다른 부부공동재산과 마찬가지로 연금수급권에 대해서도 적용되어 향후 연금 분할을 청구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보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한다. 오히려 연금수급권에 대하여 ‘청산조항’의 적용을 배제하려면 그 취지가 조정조서에 명시되어야 한다.
(4) 이 사건 이혼소송의 쌍방 청구내용, 조정 경위와 내용, 구체적 조정조항 등에 비추어 A와 B 사이에는 국민연금법상 연금수급권을 포함하여 재산분할이 종국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 소결 – 대법원의 판단
위와 같은 사실관계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1) 이혼당사자는 이 사건 특례조항에 따라 재산분할 과정에서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지만 반드시 이를 포함시켜 분할 비율 등을 별도로 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혼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이 국민연금법상 인정되는 고유한 권리임을 감안하면, 이혼 시 재산분할절차에서 명시적으로 정한 바가 없을 경우 분할연금 수급권은 당연히 이혼배우자에게 귀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2) 이 사건 청산조항은 A와 B가 향후 상대방에 대하여 이 사건 이혼과 관련된 재산분할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 적용 범위는 어디까지나 이혼 시 재산분할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은닉된 상대방의 재산에 관하여 이혼당사자 사이의 재산분할청구를 금지하는 것에 한정된다. 따라서 이혼배우자인 A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자신의 고유한 권리인 분할연금 수급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이 사건 청산조항이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3) 이 사건 조정조서에는 A와 B 사이에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을 국민연금법 제64조 제2항과 달리 정하였다고 볼 만한 기재가 없다. 또한 이 사건 이혼소송에서 A와 B가 변호사를 통해 제출한 소장과 준비서면, 반소장과 준비서면 등에 담긴 재산분할 등에 관한 주장이나 이 사건 조정에 따른 재산분할 비율과 내용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재산분할절차에서 A가 자신의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분할 비율 0%)하기로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원심의 판단에는 국민연금법상 분할연금 수급권의 법적 성격이나 이 사건 특례조항의 적용과 관련하여 이 사건 청산조항의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4. 판결의 의의
결국 대법원은 A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혼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권은, 연금 형성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여 이혼 시 청산·분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가사노동 등으로 직업을 갖지 못한 배우자에게도 상대방 배우자의 노령연금 수급권을 기초로 일정 수준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이며, 국민연금법에 따라 이혼배우자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직접 수령할 수 있는 이혼배우자의 고유한 권리이다.
따라서, 이같은 연금 분할을 배제하기 위하여는 연금의 분할에 관하여 재산분할절차에서 이혼당사자 사이에 연금의 분할 비율 등을 달리 정하기로 하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었거나, 법원이 이를 달리 결정하였음이 명백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향후 이혼과 관련된 재산분할 청구를 하지 아니한다’는 정도의 내용 만으로는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분할 비율 설정에 동의하는 합의나 법원의 심판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5. 나가며
연금수급 등을 모두 고려하여 합리적인 재산분할을 하여놓고도 향후 이혼 배우자의 분할연금 청구가 들어오는 불상사를 방지하려면, 이혼 당시에 분할연금 포기나 분할 비율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등의 조항을 분명히 명시하여야 한다. 실제 실무에서도 조정 시에 위 문구를 기재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실질적 공평에 부합하며, 정당한 권리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부당한 청구는 보장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등 현안도 있지만, 당장 현실적인 연금수급권을 제대로 보장받도록 각자가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