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차례 밝혀지는 '반인도적 범죄'...지난 1년 5.18조사위 성과 살펴보니

안동현 기자 입력:2021-05-18 17:29 수정:2021-05-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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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인도적 범죄'는 공소시효 없어…추가적 진실 드러나면 다시 재판 열릴 수 있어

  • 민간인 조준 사격 등, 민간인 학살 증언 확보되고 있어

  • '북한 개입설'에 대한 철저한 조사 이어질 것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 탄압 현장[사진=이동원 기자]


2017년 전두환 前대통령이 본인의 회고록을 통해 발표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입장은 '역사의 반동'을 알리는 총성과 같았다. 그는 “광주에서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은 “(광주사태)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을 제물”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의 발언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각종 허위사실과 루머에 대한 '자체 승인'이기도 했다. 앞서 2013년 채널A와 TV조선은 탈북민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허위사실을 방영한 상태였다. 이 보도는 유튜브 등 SNS를 통해 확산되며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날조, 혐오발언의 단서로 작용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1997년 대법원은 "5.18 광주시민들의 시위는 국헌을 문란하게 하는 내란행위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판결하며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분명한 평가를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각종 루머의 확산은 끊이지 않았고, 이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외원회(조사위)의 발족에 주요한 배경 중 하나였다.
 
'인도에 반한 죄'...실체 하나하나 밝혀져
 

'전두환을 처벌하라' (사진=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내란목적살인 등 13가지 죄목으로 기소돼 무기징역형을 받았지만, 5월 18일~26일 신군부의 강경진압으로 무수한 민간인을 학살한 행위에 대한 법적 처벌은 피해갔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 철저하게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은 민간인 학살의 실상과 이를 주도한 가해자를 분명히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5월 12일 활동을 시작한 5.18민주화운동 조사위는 지난 1년 동안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며, 5.18에 대한 가해자 처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군대가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한 행위는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하며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인도에 반하는 범죄'는 '내란목적살인죄'와 동일한 범죄가 아니라서 추가적인 진실이 밝혀지면 새로운 재판이 가능하다. 즉, 진상규명의 결과에 따라 전두환 또는 신군부 세력을 다시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조사위는 5.18 당시 계엄군이 M60기관총과 M1 소총으로 시민을 조준해 살해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제11공수여단의 경우,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에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하여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또한 조사위는 광주교도소 양쪽의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최소 13차례 이상의 차량피격사건이 있었다는 증언과 문헌을 입수했다. 이와 관련 여러 명의 장·사병이 교도소 옆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는 것과, 마이크로버스가 피격됐을 당시 현장 사망자가 최소 17명이라는 증언이 새로 수집됐다.

나아가 조사위는 △송암동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계엄군의 사체처리반 의혹 △광주진압작전과 민간인학살의 연관성 등에 대한 증언을 확보하고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해자들의 고백이 바탕이 된 5.18의 진실과 실체

지난 3월 16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왼쪽)이 자신의 총격으로 사망한 고(故) 박병현 씨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사진=5.18진상규명위원회 제공]


조사위의 이번 조사는 열 번째 진상규명으로, 과거의 진상조사와 달리 '상향식 조사‘ 방법을 택해 사태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상향식 조사는 광주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 장·사병, 피해 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계엄군 상부의 책임을 따져가는 방법이다. 이전 조사는 신군부 및 계엄군 지휘책임자들부터 조사하는 '하향식 조사'로, 상부 책임자들이 침묵하는 경우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위가 지난 1년간 진상 규명에 관한 여러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진입했던 일반 병사들의 증언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조사위 위원들은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들을 한 명씩 찾아가 당시에 대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몇몇 계엄군은 수십 년 닫아뒀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조사위의 이와 같은 노력 가운데, 지난 3월 27일 당시 계엄군이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의 유가족을 찾아 사죄와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가해자 ㄱ씨는 조사위에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유가족은 그의 방문을 받아들이며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건네기도 했다.
 
조사위, ‘북한군 개입설’ 발설자 조사…“의미 있는 진술 확보"

한편 채널A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최초로 주장했던 장본인인 김명국(가명)씨는 지난 6일 JTBC 인터뷰를 통해 "당시에 광주에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본인이 말한 내용은 남파 간첩을 키우는 대남연락소 소속 전투원이었던 시절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꾸민 것이라고 실토했다.

이에 5.18 조사위원회는 김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위는 "김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여 의미있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그동안 위원회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자료와 연계하여 북한 특수군 침투의 가능성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 시위대에 의한 무기고 피습과정에서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시위대와 경찰 관계자, 현장 목격자 등에 대한 증언을 토대로 조사하고 있다”며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한 사실 여부를 폭넓게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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