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이슈] “줄여야” vs “늘려야” 변시 합격자수 갈등... 해결책은 없나?

한석진 기자 입력:2021-05-05 09:00 수정:2021-05-0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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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지난달 2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연 집회에 참가한 변호사들이 변호사시험 합격자 인원 감축을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놓고 법조계와 예비 법조인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장소에서 대규모 시위를 각각 개최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진풍경을 펼치기도 했다. .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결정하는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의 회의가 열린 지난달 21일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정부과천청사 앞 도로에서는 변호사단체와 로스쿨 학생들이 각각 집회를 열었다. 이날 시위는 '합격자를 줄이라'는 변호사단체의 시위에 맞서 로스쿨 학생들이 맞불집회를 진행하는 모양새로 진행됐다.

도로 한편을 차지한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변호사들은 “변시 합격자 수를 1200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신규 변호사 대량실업 사태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맞서 다른 한편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와 수험생들이 변협 측을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하며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취지에 맞게 변호사시험의 자격시험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두고 변호사들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측의 갈등이 격해지는 가운데, 같은 날 법무부는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706명으로 결정했다. 작년 대비 62명이 줄었다. 올해 변호사시험 전제 응시자 수는 3156명으로 전제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54.06%다.

법무부의 결정을 두고 대한변협과 로스쿨 측 모두에게서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우선 대한변협은 지난달 22일 성명을 통해 “법무부가 법조계의 절절한 외침을 외면하고 법조 시장 수용 한계를 뛰어넘는 합격자 수 결정을 했다”고 비난했다. 법무사·행정사 등 유사 직역 통폐합을 전제로 로스쿨이 도입됐지만, 오히려 유사 직역이 확대돼 현재의 합격자 수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또 “이번 합격자 결정을 규탄하고 향후 법률시장 혼란의 책임이 법무부와 정부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고 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대한변협은 자체적으로 실무 연수 인원 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실력 행사에 돌입했다. 지난해 700여명에게 제공했던 연수 기회를 올해는 최대 200명에게만 제공하기로 지난달 26일 결정한 것이다.

현행 변호사법은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법원이나 검찰, 법무법인 등과 같은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 이상 연수를 받아야만 법률사무소 개업 및 사건을 수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제21조의2 제1항).

그 결과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에서 연수를 신청한 545명 가운데 200명 안에 들지 못한 나머지 345명의 합격생은 변호사 자격증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변호사 업무를 하지 못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로 사건이 많이 넘어가면서 변호사의 사건 수임이 많이 줄었는데, 그에 비해 변호사 수는 너무 늘어나 소형 법무법인 등에서 월 300만 원만 준다고 해도 일하겠다는 변호사가 줄을 설 정도”라며 “최근 대한변협의 조치들은 대다수 변호사 회원들의 ‘먹고살 수 있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법학전문대학원 원우협의회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의 밥그릇 지키기로 희생되는 로스쿨 학생들을 조명해달라”며 대한변협의 행보를 비판했다. 현재 국내 송무 시장에서 변호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법률서비스 시장의 구조 개선과 체질 개선을 통해 풀어나갈 문제이지, 변호사 선발 인원 감축으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라는 취지다.

한국법학교수회도 “대다수의 국민은 문턱을 낮춘 법률서비스를 원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질 좋은 법률서비스가 보장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변협의) 정원 감축 주장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는 “변호사단체는 업역 확대의 노력은 하지 않고 합격자 수 통제 등 로스쿨 제도 핍박에만 힘쓰고 있다. 합격이 어려워지면서 로스쿨은 고시학원이 됐고 실무 중심 교육, 특성화 및 전문 교육도 사라지고 있다”며 로스쿨 제도 정상화를 위해서는 적정 합격률 보장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갈등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변호사시험이 치러진 1월부터 합격자가 발표되는 4월까지 매년 같은 논쟁이 벌어져 왔다.

왜 그럴까? 변호사시험 제도 도입 당시 일정 실력 이상이면 면허를 주는 자격시험으로 설계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시험에 정원을 정해 사실상 ‘취업고시’처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합격자 선정 기준이 명확한 것도 아니다. 로스쿨 교수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무부가 합격자 수를 정할 때, 선정 기준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 법무부 장관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합격자 수가 달라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지금까지 “입학 정원 대비 75% 이상 범위에서 기존 합격자 수, 합격률, 로스쿨 도입 취지, 응시인원 증감, 법조인 수급 상황, 해외 주요국 법조인 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격 인원을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무부가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 이상 해마다 소모적인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격자 숫자에 인위적인 제한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응시생이 늘면 그만큼 합격자 수를 늘리거나 의사시험처럼 절대평가를 해서 일정 수준에 못 미치면 과감하게 수를 줄이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고시 출신의 현직 변호사도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다면 치열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제도적인 보완이 이어져야 하는데, (법무부가) 그 이후로 손을 놓고 있으니 이런 문제들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수도권의 한 로스쿨에 다니는 재학생은 “후배를 짓밟는 전문자격사는 변호사 말고 또 있겠냐”며 “현직 변호사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맞서 법무부가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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