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광화문 집회 허가 판결 논란과 사법부의 '책임성'

김낭기 논설고문 입력:2020-08-27 12:52 수정:2020-09-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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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허가한 서울행정법원 판사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이 판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청원에 30만명 가까운 사람이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몇몇 의원들은 물론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장관까지 판사의 집회 허가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 의원들이나 네티즌들이 판사에게 합리적 비판을 넘어서서 인신 공격적 비난을 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이번 일은 법관 개인 또는 사법부가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과제란 법관 또는 사법부의 ‘책임성’이라는 과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법관이나 사법부와 관련해 논란이 됐던 문제는 ‘독립성’이었다. 특히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중대한 과제였다. 이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이제 ‘책임성’도 법관이나 사법부의 중대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시민들, 법관에게 '판결 정당성' 추궁

법관이나 사법부의 ‘책임성(accountability)’이란 ‘판결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책임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책임과는 의미가 다르다.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책임이란 일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해고당하거나 사임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어느 프로 야구 감독이 맨날 져서 성적이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해고당하거나 스스로 물러나거나 연봉을 삭감당한다. 이렇게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희생함으로써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이런 책임을 ‘희생적 책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비해 법관이나 사법부의 책임은 ‘설명적 책임’이다. 설명적 책임이란 어떤 행동을 한 개인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설명해야 할 책임’이다. 자기의 행동이 정당한지, 정당하다면 왜 정당한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할 책임이 설명적 책임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다.

법관은 판결문에 판결 이유를 밝힘으로써 그 판결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국민이 설명에 납득하면 그 판결은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법관으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된다.

광화문 집회 허가 결정을 둘러싼 논란은 판사의 설명이 과연 정당한가에 관한 논란이다. 서울행정법원 박형순 부장판사는 서울시의 광화문 집회 금지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10건의 신청 중 2건에 대해 효력 정지 결정을 내렸다. 집회 허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2건 집회는 4·15총선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국가비상대책위원회’와 보수단체 ‘일파만파’가 개최하는 집회다. ‘국가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 을지로입구 2개 차로에서 2000명, ‘일파만파’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등에서 200명이 모여 집회한다고 신고했다. . 

판사가 밝힌 집회 허가 결정 이유의 요지는 이렇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주최 단체가 신고한 마스크 착용 등 구체적 방역 대책이 준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할 수 없다 ▷ 옥외 집회로 감염병이 확산되리라고 단언하기 어렵다(지난 8월 1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 및 여의도에서 각각 2000명이 모인 집회, 8월 7일 여의도에서 1만명이 모인 집회가 있었지만 이로 인해 코로나가 확산됐다는 증거가 없었다) ▷무조건 집회를 금지할 게 아니라 집회의 자유와 국민의 보건을 적정선에서 조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정세균 총리는 “제가 보기엔 참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원래 신고한 내용과 다르게 집회가 진행될 것이라고 하는 정도의 판단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놓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험에 내모는 것은 정말 잘못된 논리”라고 주장했다.

사법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 커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린 시민도 허가 결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100명의 시위를 허가해도, 취소된 다른 시위와 합쳐질 것이라는 상식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기계적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내세운 무능은 수도권 시민의 생명을 위협에 빠트리게 할 것이다”고 했다.

판사의 설명과 반대 측의 반박 중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고 정당한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린지를 칼로 무 자르듯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법원 판결과 일반 행정 간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 행정은 하나의 규칙을 정해 일률적으로 시행한다. ‘코로나 대규모 감염이 우려되기 때문에 집회를 금지한다’는 규칙을 정하고 집회를 모두 금지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판결은 그 규칙을 특정 사건의 내용에 따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구체적 방역 대책을 세우고 이를 잘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집회라면 허가하고 그렇지 않은 집회는 불허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독주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국민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감시한다. 그래서 판결은 일반 행정보다 훨씬 더 세세하고 정밀할 수밖에 없다. 사안의 여러 측면을 두루 검토하고 각 측면이 갖는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판단해서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행정부가 정한 집회 금지 규칙에 따라 ‘무조건 금지’ 결정을 내린다면 사법부가 있을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정밀한 검토 끝에 내린 판결이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세세한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그 판결은 잘됐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화문 집회 허가 결정에 대한 논란은 법관의 판결이라고 무조건 통하는 게 아닌 시대가 됐음을 보여준다. 이제 시민들이 나서서 ‘국민의 공감을 얻을 만한 판결인지’를 따지고, 사법부는 판결이 타당함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됐음을 말해준다.

과거에도 특정 사건의 판결에 대한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정치성이 강한 판결에 대해 특정 정당과 그 지지세력이 정파적 입장에 따라 제기하는 논란이었다. ‘우리 편’에 불리한 판결이면 대놓고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사법부에 쏟아붓고, 유리한 판결이면 사법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논란은 꼭 정파성 논란만은 아니다. 물론 진영에 따라 일방적으로 비난하거나 찬양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상식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정 판사가 성 범죄에 지나치게 낮은 형량을 선고해 왔다며 이 판사를 성 범죄 담당 재판부에서 배제해야 한다든지, ‘웰컴 투 비디오’ 사건과 관련해 손정우의 미국 인도 불허 결정을 한 판사를 대법관 후보에서 제외하라는 등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대표적이다.

이 청원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꼭 옳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주장 역시 찬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핵심은 판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일상화되고, 그 결과 법관의 ‘설명적 책임’ , 즉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할 책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책임성은 이제 사법부가 짊어져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된 것이다. 사법부가 책임성을 소홀히 하면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법부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책임성은 중요하다.

사법부의 '책임성' 요구하되 '독립성'은 존중해야

다만 책임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칫 사법부의 독립성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사법부 업무의 핵심은 공정한 판결이다. 공정한 판결을 하려면 독립성이 필수적이다. 정치권력, 여론, 기업, 시민단체 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판결할 수 있는 것이 독립성이다. 독립성을 잃으면 공정한 판결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책임성은 국민이 수긍할 만한 판결을 할 것을 요구한다. 자칫 법관이 정치권력, 여론, 기업, 시민단체 등의 눈치를 보고 이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판결을 할 우려가 있다.  그러면 공정한 판결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책임성과 독립성은 상반된 관계에 있다. 독립성을 강조하면 책임성이 약해질 수 있고 책임성을 강조하면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

책임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동시에 지키려면 무엇보다 판결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 아니라 합리적 비판의 사회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 특히 인사권을 가진 정치권력의 신중한 자세가 중요하다. 판사들이 정권 눈 밖에 날 것을 두려워해 정권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광화문 집회 허가 판결을 비난하면서 “지금 재판부가 해야 할 일은 변명이 아니라 국민께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며 “사법부의 진정어린 반성이 없는 한, 국민은 법원의 오만한 태도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이원욱 의원은 “지금의 코로나 위기 상황을 만든 그들을 국민들은 ‘판새’(판사 새X)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이 판사봉을 잡고 또다시 국정농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원욱 의원은 광화문 집회 허가 같은 오판을 막겠다며 박형순 부장판사 이름을 딴 이른바 '박형순 금지법'안을 발의했다. 

’판새’라는 원색적 비난은 물론이고 ‘변명’ ‘오만한 태도’ ‘용서’ 등의 표현은 합리적 비판을 넘어선 인신 공격이자 감정적 비난이다. 이래서야 어떤 판사가 소신껏 재판하고 그 결과를 설명하려 할 엄두를 내겠는가. 일부 단체들은 10월3일 개천절에 또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이 집회의 허가 여부를 놓고 법원이 또 시험대에오를 수 있다.  

판사들 스스로도 특정 정파나 집단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판결로 책임성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친정권 인물이 관여된 사건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무죄 판결을 하거나 형량을 확 깎거나 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판결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허위사실 유포 사건,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의 뇌물 사건 재판 등이 그 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기존의 요구 외에 책임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요구하는 지금의 기류는 사법부 발전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사법부는 스스로 책임성을 높이려 노력하고, 정치권력은 책임성을 내세워 독립성을 침해하는 언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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