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형법 제269조 1항과 제270조 1항) 규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즉각적으로 법을 무효화시킨다면 법의 공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혼란이 발생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을 하였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위 현행 낙태죄 규정이 2020년 완전히 폐지되기 전까지 약 1년 반의 시간 내에 해당 법 개정 등 입법적 조치와 개정 전 공백기의 대책 마련에 고심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큰 중요성을 가지는 만큼, 헌법재판소 결정문 및 보도자료 내용을 기초로 사안을 소개하기로 한다.
2. 판단의 전제가 되는 기본적 사항들
가. 개요
청구인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총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하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어(광주지방법원 2016고단3266) 재판을 받다가, 위헌법률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나. 심판대상
[심판대상조항]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 낙태의 의의
낙태라 함은 태아를 자연분만 시기에 앞서서 인위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하거나 모체 안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말하며, 낙태죄는 이와 같은 낙태를 내용으로 하는 범죄이다.
라. 현행법상 낙태죄의 체계
(1) 형법은 제27장 낙태의 죄에서 낙태를 전면금지하면서도 한편으로, 모자보건법을 통하여 일정한 의학적․우생학적․윤리적 적응사유 등이 있는 경우 형법상의 낙태죄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낙태를 일부 허용하고 있다.
(2) 자기낙태죄(형법 제269조 제1항)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규정으로 낙태죄의 기본적 구성요건이며, 동의낙태죄(형법 제269조 제2항)는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하는 경우 성립한다. 업무상동의낙태죄(형법 제270조 제1항)는 동의낙태죄에 대하여 신분관계로 책임이 가중되는 가중적 구성요건으로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임신한 여성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함으로써 성립한다.
(3)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은 예외적으로 다섯 가지 정당화사유에 한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즉, 의사는 ①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④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임신한 여성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허용되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경우에도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에 대해서만 할 수 있고(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 제1항), 이 경우 형법 제269조 제1항․제2항 및 제270조 제1항에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아니한다(모자보건법 제28조).
마. 선례
헌법재판소는 2012. 8. 23.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자기낙태죄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고, 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조산사’에 관한 부분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하였다(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3. 판결 요지
가. 헌법불합치의견(재판관 4인)
(1)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판단 -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이하 착상 시부터 이 시기까지를 ‘결정가능기간’이라 한다)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 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하가 임신한 여성의 임신종결 여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하여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여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 모자보건법상의 정당화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 예컨대,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
○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나. 단순위헌의견(재판관 3인)
(1) 임신 제1삼분기(first trimester, 대략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14주 무렵까지)에서의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관련하여 심판대상조항들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 자기낙태죄 조항은 그동안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실제 가동 여부가 좌우되거나, 본래의 목적과 무관하게 상대 남성 또는 주변인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였으며, 임신한 여성으로 하여금 임신 유지에 관하여 필요한 사회적 논의나 소통을 하지 못한 채 임신의 종결을 결정하여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 낙태에 대한 전면적․일률적 금지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게 하고, 음성적인 낙태를 할 수밖에 없어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돌봄 등도 제공받기 어렵게 하며, 낙태의 비용도 증가시킨다. 또한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에 산부인과 전문의 등 의료인들도 그 수련과정에서 낙태 수술법을 충분히 훈련받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음성적 낙태로 인하여 의료사고나 후유증의 발생빈도를 증가시킨다.
○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한 것으로서,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다.
○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하여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인 임신 제1삼분기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그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율성에 터잡아 형성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숙고한 뒤 낙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 이상과 같은 이유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되며, 임신 제1삼분기의 낙태마저도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하여 제한받는 사익이 자기낙태죄 조항이 달성하는 공익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어서 심판대상조항들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4. 판결의 의의 및 나가며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낙태가 전면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현실에 맞지 아니한 현행 법을 개정할 것을 국회에 촉구한 것인데, 관련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앞으로 국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결정문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헌법불합치 의견은 22주, 위헌의견은 14주를 ‘결정가능기간’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입법자는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함하여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등에 관하여 심도 깊게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문제로 법 공백기 동안 낙태허용 가이드라인의 규정, 낙태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여부, 낙태유도 약물의 허용 여부, 피임등올바른성교육체계 및 의료시스템의 정립 등의 현안도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측면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다만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이 경시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