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동산 대책 믿었는데…法 "불확실한 정책 내세운 집주인, 배상해야"

장승주 기자 입력 : 2024-04-26 16:36 수정 : 2024-04-26 16:36
폰트크기조절링크

실거주 완화 발표에 세입자 내보낸 집주인에 "배상하라"
"정책 취소 여부는 불확실할 뿐 예상 불가능한 건 아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A씨는 2022년말 아파트 분양권 추첨에 응모해 당첨됐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아파트라 투자 가치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분양권 전매제한과 실거주 의무 탓에 계약을 포기할까 했다.
 
때마침 2023년 1월 3일 전매제한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연내 추진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그는 정부를 믿고 분양권 계약을 했다. 나아가 A씨는 내년이면 각종 규제가 폐지될 것으로 예상해 B씨와 분양권 전매계약도 했다.
 
올해까지 이 상황이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분양권 전매 제한은 완화됐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는 폐지되지 않았다. 결국 분쟁이 벌어졌다. B씨는 자신이 곧 입주할테니 실거주 의무 기간 2년 동안 A씨 명의로 전입신고를 하되 그 뒤에 소유권을 넘기라고 했다.
 
반면 A씨는 위장전입을 할 수는 없고 당초 실거주 의무 연내 폐지를 예상해 계약한 것이므로 분양권 전매계약은 취소돼야 한다고 맞섰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 발표가 실현될 줄 알고 계약을 했다가 손해를 봤다면 누구 책임일까.
 
남광진 변호사는 26일 “A씨와 B씨는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와 실거주 의무 연내 폐지를 내다보고 계약을 했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정부 정책이 예상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법안의 국회 통과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 체결 때 정책의 성숙 단계를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A‧B씨의 소송전은 아직 결론 나지 않았지만 다른 판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결론만 말하면 1,2심이 각각 다른 결론을 내놨으며, 특히 2심에서는 정책 철회 가능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세입자를 내보낸 집주인이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 나왔다.
 
실제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정책 경과가 예상 가능한 것인지’를 쟁점으로 다뤘다. 정부는 2020년 6월 “앞으로 서울에서 재건축 사업을 할 때 그냥 소유자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2년 이상 거주한 소유자여야 분양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살고 있던 국내 아파트 소유자 C씨는 이 뉴스를 보고 거주 요건을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해당 아파트에는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세입자 D씨가 살고 있었다. 그는 실거주를 이유로 D씨를 내보냈고, 귀국하지 않은 채 전입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같은 해 12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반년 뒤 철회됐다. 그러자 C씨는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D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재임대를 한 것이라며 C씨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1심 법원은 “정부가 느닷없이 2년 실거주 요건을 들고나오자 C씨가 실거주 의사를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며 “이후 2년 실거주 요건이 완전히 사라져 거주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 여당인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인데 국회 통과를 못해 요건이 사라질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므로 C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C씨가 한 전입신고는 실제 거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허위로 한 전입신고”라며 “정책 등의 경과는 갱신거절 당시 불확실한 사정이었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라 할 수 없다”고 봤다.
 
오히려 “C씨는 정책 입법화가 불확실하다는 걸 알 수 있던 상태에서 갱신거절을 했다”며 C씨에게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남 변호사는 “하급심 판결 결과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정책 경과가 예상과 다르게 흐를 경우 계약을 둘러싸고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위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밴드 웨이보 카카오톡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